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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최근 배우자가 장래에 받게 될 퇴직금, 연금 등도 이혼할 때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재산분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측은 부부는 결혼생활 동안 소득과 소비를 공유하며 함께 노후를 준비하는 경제생활을 했기 때문에 ‘연기된 임금’의 성격을 갖는 퇴직금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측은 의무가입대상인 퇴직·사학연금 등은 사적 재산권의 성격보다 최소한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국가가 강행법규로 제정한 공공적 성격이 커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퇴직금은 ‘연기된 임금’… 배우자의 기여 인정해야


부부는 통상 소득과 소비를 공유한다. 그리고 소비 후 남는 소득을 저축하여 함께 노후에 대비한다. 그러나 이혼과 동시에 이와 같은 공동의 경제생활은 와해된다. 스스로의 소득에 기초하여 새로운 재정계획을 짜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봉착한 각 배우자는 앞으로의 삶에 기초자산이 될 재산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아직 회사에서 지급받지도 않았고, 지급을 청구할 수도 없는 장래의 퇴직금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아 달라는 주장은 이런 절박함에 기초하고 있다.


법원은 왜 이 같은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가. 이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공평의 이념이 요구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은 혼인기간에 당사자 쌍방의 협력에 의해 이룩된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장래의 퇴직금은 분명 당사자 쌍방의 협력에 의해 이룩된 재산이다. 퇴직금은 근로자가 근로관계의 종료와 동시에 사용자로부터 지급받는 일종의 연기(延期)된 임금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 연기된 임금을 받기 위해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일정 시간 이상의 근무를 하여야 한다. 근무시간 동안 그가 하지 못하는 가사노동·양육 등 가정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각종 행위는 다른 일방이 노무(전업주부) 또는 금전(맞벌이)의 형태로 보충 내지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장래의 퇴직금을 재산분할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그 이익을 근로자 본인만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퇴직금에 터 잡아 노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혼인생활의 유지를 위해 스스로 근로의 기회를 포기한 배우자 또는 그러한 기대에 기초하여 공동 생활비용을 지출해 온 배우자로서는 예상치 못한 희생을 강요당하게 된다. 물론 현재 재산분할의 실무는 이러한 희생을 다소간 전보해 주기 위해 장래의 퇴직금을 ‘기타 사정’으로 고려하여 재산분할의 비율을 약간 상향조정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장래 지급받을 퇴직금 외에 번듯한 재산을 가지고 있지 못한 대부분의 소시민에게 이러한 법원의 배려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혼 당시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이 0원인 경우에는 애초부터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것이 봉쇄되기 때문이다.


미국·영국·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적 입법례가 장래의 퇴직금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 연유한다. 장래의 퇴직금을 분할해 주어야 하는 상대방 배우자로서는 이러한 결론을 감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의 실무는 재산분할의 액수나 방법을 결정함에 있어서 법관의 재량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므로, 상대방 배우자에게 장래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그 액수가 줄어들 개연성이 있음이 증명된 때에는 이를 ‘기타 사정’으로 참작하여 분할의 액수나 비율을 적절히 조정하면 될 일이다.


이혼은 장려될 만한 사회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정의 유지를 위해 오랜 기간 쏟아 부은 노고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그 결과 이혼 후 경제적 자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 그 때문에 이혼을 포기하게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비탄에 잠기게 만드는 것, 결국 돈에 의해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결과를 방치하는 것 역시 자랑할 만한 시스템이 아니다. 따라서 장래의 퇴직금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소혜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혼.사별 여성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 실태


■ 미·영도 의무가입 연금은 재산분할 대상으로 안 봐


헤겔은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고 했다. 제도의 이성적 측면을 유지하고, 비이성적인 측면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연금법의 분할연금제도와 유사하게, 장래 취득할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퇴직금도 이혼할 당시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사학연금 등은 후불임금인데, 임금이 부부의 공동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인 이상 재산분할대상이 되어야 한다’거나, ‘미국·영국 등도 이혼할 때 연금을 분할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필자는 이런 주장에 반대한다. 첫째, 미국·영국도 사적으로 가입한 노령연금은 재산분할대상으로 삼지만, 의무 가입대상인 노령·퇴직연금은 제외한다. 연방 사회보장법에 따라 피용자의 기준월소득액의 12.4%가 본인 기여금과 사용주 부담금으로 납입되는 미국 퇴직연금이 그 예다. 기준월소득의 25.8%가 본인기여금과 사용자부담금으로 납입되는 영국 국민연금법상의 노령연금도 재산분할대상이 아니다. 이런 의무적 노령·퇴직연금은 노후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위해 국가가 강행법규로 도입한 제도다. 사적 재산권의 성격이 약해 상속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납입금 비율, 지급 액수와 지급 대상은 ‘사회연대’의 정신에 입각해 법률로 정한다.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기에 부적절한 것이다.


둘째, 퇴직금 취득에 가사활동 배우자가 기여했으므로 이혼할 때 재산분할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부부별산제나 부부공동재산제 중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옳을 수도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부부별산제 법제에서는 부부는 각자 근로로 번 임금으로 생활비를 지출하고 가사활동을 함으로써 가정이라는 공동생활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외벌이 가정의 경우, 소득활동 배우자가 자신, 가사활동 배우자, 그 밖의 피부양자의 부양비를 지급할 법적 의무가 있다. 양성평등을 고려하면, 가사활동과 소득활동은 동일한 가치가 있다. 이때 가사활동과 생활비지출은 부부가 부담하는 동등한 의무로 상호 맞비길 수 있다. 가사활동 덕분에 임금이나 장래 퇴직금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가사활동 배우자의 기여가 있으니 사학연금 등도 분할이 필요하다는 논리라면, 장애, 질병 등으로 가사활동을 제대로 못했던 배우자들은 아무 권리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결론에 찬성할 수 없다. 기여와 무관하게 혼인 중 형성된 의무적 노령·퇴직연금에 대해 이혼배우자도 권리를 가져야 한다. 재산분할 때문에 이런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령·퇴직연금은 사회연대, 가족 연대의 정신하에 부부의 노후 최저생활보장을 목적으로 납입했기 때문이다. 권리의 내용과 행사방법도 이런 목적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 혼인기간, 이혼 후의 재혼 여부, 자신도 노령·퇴직연금을 수령하는지 등이 주요 고려요소다. 무엇을 중시할지는 시대마다 다르다. 정책목적에 따라 권리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사학연금 등에는 이혼 배우자의 권리를 정한 법률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법원이 재산분할시 이런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 현재의 대법원 판결을 유지하되, 장래 취득할 사학연금 등을 어떻게 참작할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자 이성적인 조치다.


<제철웅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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