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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 험에서 영어영역을 절대평가로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현재의 상대평가 방식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영어 사교육비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부담이 줄어들고, 학교 현장에서 실용영어 중심의 다양한 수업과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절대평가는 영어 평가 수준을 낮춰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영어 능력과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고, 일부 대학들이 쉬워진 수능영어 대신 특화된 영어전형을 도입한다면 오히려 소득계층 간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 수험생들, 사교육비·과도한 학습 부담 줄어들 것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제대로만 추진된다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수능 영어시험의 절대평가 전환은 고교 단계의 영어 사교육비 감소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수능 영어시험은 변별력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난도가 상승하였으며, 이는 사교육 수요를 확대하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실제로 교육부의 사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고교의 1인당 영어 사교육비는 2010년 6만2000원에서 2013년 6만9000원으로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절대평가 도입은 이와 같은 등급을 가르기 위한 불필요한 난도 상승을 근본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사교육 의존을 줄이고 학교 교육만으로 충분히 시험 대비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다.

또한 수능 영어시험의 절대평가 전환은 수험생의 과도한 학습 부담과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다. 현행과 같은 상대평가 체제에서 수험생은 시험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남들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여야 했고, 쉬우면 쉬운 대로 한 문제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러나 절대평가를 도입하게 되면, 다른 수험생의 성적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실력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면 되기 때문에, 경쟁 강도는 줄어들고 한 문제 때문에 등급이 갈리는 실수에 대한 스트레스 역시 훨씬 덜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수능 영어시험의 절대평가 전환은 학교 영어교육이 실용영어 중심의 다양한 수업과 평가를 시도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마련해줄 것이다. 지금과 같이 변별력을 위해 고교 수준을 뛰어넘는 문제가 출제되고, 남들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고난도 문제풀이 중심의 반복학습이 학교 영어수업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경향은 점차 완화될 것이고, 그 자리를 다양한 방식의 수업과 평가가 대체하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수능 영어시험의 절대평가 전환은 많은 긍정적 요소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관련 정책이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영어시험의 난도 하락에 따른 ‘풍선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영어만이 아니라 수학을 비롯한 다른 영역에서도 ‘쉬운 수능’ 기조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 영어 절대평가 전환과 ‘쉬운 수능’ 기조 속에서 변별력 약화를 핑계로 대학이 별도의 시험을 실시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수능의 난도 약화로 생기는 변별력 문제는 대학이 시행하는 별도의 시험이 아니라 점차 정착되고 있는 학생부 종합평가 전형 확대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셋째, 절대평가 도입은 영어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 확대하여 수능시험 자체를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 지식과 암기 위주의 시험,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줄세우기 방식의 선발은 우리 교육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며, 그 핵심에 수능시험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평가 도입을 영어에만 그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청와대는 수능 영어시험 절대평가 전환을 단순히 영어사교육 문제의 해법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수능 제도와 대입전형 전반의 개선에 대한 밑그림을 가지고 수능 영어시험 개선을 추진한다면 절대평가 도입은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 대입제도 전반에 매우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김승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숭실고 교사>



정병헌 수능출제위원장이 수능 출제 경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 영어 능력 저하… 변별력 없어 대학서 별도 절차 도입할 것


국제경쟁력 확보와 고급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국제적인 지식네트워크 참여나 한국 문화와 지식의 확산 등을 위한 영어구사능력은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기본조건이 되고 있다는 현실적 상황으로, 영어교육은 국가 차원의 매우 중요한 교육정책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마다 영어교육과 관련한 수많은 정책들이 발표되었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는 요동쳤고, 학생과 학부모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어김없이 영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교육정책과 수능 영어 제도의 변화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평가를 상대평가 방식에서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관한 것이다. 현재의 수능 영어 상대평가 제도는 학생 간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여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정요인에 대한 교육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과, 막대한 영어 사교육비 지출로 인한 가정경제 부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고민이 함께 자리한 논의로 해석된다.

영어 절대평가 방식은 적정 수준에 도달한 학생들에게 그에 합당한 점수를 부여하고,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학습에 대한 성취동기를 갖게 할 수 있다는 교육적 가치를 유지하고, 또한 학생 간의 불필요한 과다경쟁을 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달콤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달콤함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우선 평가에 대한 절대적 기준도 모호한 상태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영어 평가의 수준을 하향시킬 것이 자명하다. 입시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학생들은 영어에 대한 노력이 감소될 것이고, 일상에서 영어에 대한 노출이 없는 우리의 환경에서 영어능력은 자연스럽게 현저히 약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입학 후 사회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영어는 학생들이 무슨 방법으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향후 취업과 승진에서도 영어에 대한 파이를 축소할 것이란 말로 가벼워진 영어교육과 입시정책의 연계성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는 이해가 어렵다. 우리 자녀의 미래 활동무대는 세계이며, 이미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그들에게 영어는 이제 더 이상 사치스러운 언어가 아니다.

또한 일각에서는 영어가 수능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되고 현재보다 쉽게 출제된다면, 영어에 대한 사교육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한다. 그러나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돼 입시에서 영어 변별력이 약화될 경우, 대학들은 또 다른 영어 선발 방식을 도입하여 결과적으로 지금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영어 사교육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그리하여 어쩌면 지금보다 영어교육에 대한 소득계층 간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것이 우려된다. 지금도 소수의 대학이지만 전형에 따라 높은 수준의 영어를 본고사 형태로 치르는 대학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도 입시와 미래에 대한 설계가 충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때마다 잦은 대학 입시의 변화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결과적으로 사교육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 방식의 전환만이 사교육비 경감의 해결책이며 국가의 역할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섣부른 소수의 교육철학에 의하여 나라 전체가 요동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김선희 |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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