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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자 아이돌 스타들에게 최대의 적은 ‘생얼(맨얼굴)’ 공개일 것이다. 생얼이 화장한 얼굴 못지않게 예쁘면 인기에 도움이 되지만, 그러기란 쉽지 않다. 어쩌다 화장한 모습과 상당히 다른 사진이 인터넷에 뜨면 ‘OOO의 굴욕’이 된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녀들의 맨얼굴이 궁금하지 않다.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면 그만이지, 꿀피부인지 여드름투성이인지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심각한 건 생얼 공개 열풍이 TV 밖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맹활약 중인 지소연·이현영 선수를 ‘익사이팅 듀오(활기찬 2인조)’라 부른다는데, 이명박 정권에도 익사이팅 듀오가 나타나 권력의 생얼을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다(지소연·이현영 선수여, ‘몹쓸 비유’를 용서하라!).
강 의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친여 보수언론까지 앞다퉈 보도했으니 생략하고, 상당수 언론이 피해간 유 장관의 발언만 정리한다. “(6·2 지방선거 때) 젊은애들이 전쟁과 평화냐 해서,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고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이런 정신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 나라로서의 체신이 있고 위신이 있고 격이 있어야지.”
강 의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친여 보수언론까지 앞다퉈 보도했으니 생략하고, 상당수 언론이 피해간 유 장관의 발언만 정리한다. “(6·2 지방선거 때) 젊은애들이 전쟁과 평화냐 해서,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고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이런 정신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 나라로서의 체신이 있고 위신이 있고 격이 있어야지.”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젊은애들’ 탓하는 외교장관
유 장관이 ‘어록’을 남긴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때다. 외통위 소속이 아닌 천정배 의원이 비준안 저지를 위해 들어온 걸 본 유 장관은 “여기 왜 들어왔어. 미친×”라고 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비준안 상정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이 계속되자 “이거 기본적으로 없애버려야 해”라고 일갈했다.
국제무대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장관의 말은 무겁고 신중해야 한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고위공직자에 걸맞은 세계관과 가치관, 뚜렷한 논리, 고상한 품격과 세련된 언어 구사가 필수다. 우선, “김정일 밑에 가서 살아라” 발언은 유 장관이 민주국가의 고위공직자다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선거 참여가 시민의 권리라면,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은 시민의 의무다. 고위공직자는 더욱이 시민의 정치적 선택을 존중하고 받들어야 마땅하다.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있을 때마다 지난 대통령선거의 득표차 531만표를 내세운 게 어느 정권인가. 대선에선 자신들이 이겼으니 반대세력도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지방선거에선 자신들이 졌으니 반대세력이 ‘잘못된 선택’을 책임지라는 것인가.
다음으로, “김정일 밑에 가서 살아라” 발언은 철저하게 비논리적이다. 유 장관 말대로라면 지방선거 때 전쟁이 싫다며 민주당 찍은 젊은이들은 친북·종북주의자라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국가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셈이다.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사들, 아니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단 말인가.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 땅에서. 정부 외교안보팀의 핵심인 유 장관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려운 중대 사태다. 그런데도 반성하기는커녕 ‘젊은애들’ 탓을 하다니.
마지막으로, “김정일 밑에 가서 살아라” 발언은 고상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했다. 국민의 녹을 먹는 공복으로서 국민의 ‘정신상태’를 들먹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 민주당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공화당 지지자들을 향해 정신상태를 들먹인다면 자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나라로서의 체신·격이 있어야”
세간에는 유 장관이 7·28 재·보선을 앞두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천안함 외교 실패를 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언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ARF의 천안함 관련 의장성명에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명시한 ‘규탄’이라는 표현이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의원의 말처럼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본인이 어떤 지위에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나온” 발언이길 바란다. 그렇다면 깨끗이 사과하고 조용히 물러나면 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유 장관에게 잠시 유 장관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 “이런 정신상태로는 정권 유지하지 못합니다. 나라로서의 체신이 있고 위신이 있고 격이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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