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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가

opinionX 2010. 8. 17. 16:04
나진진(배두나)과 하동아(이천희)는 요새 유행어로 ‘잉여’(취업난을 겪는 젊은 세대가 자조적으로 자신을 일컫는 말)다. 돈 없고, 배경 없고, 가방끈도 짧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너무 젊다는 거다. 사는 게 버거운 이들에겐 젊음도 짐일 뿐이다. 그래서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댄다. 자신과 꼭 닮은 상대방을 물어뜯음으로써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3류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노래하게 된 진진이 동아에게 묻는다. “넌 꿈이 뭐냐?”(진진) “너, 헛바람 들었구나.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살아야 돼.”(동아) “송충이도 태어난 이유는 있을 거 아니야.”(진진) “우리에겐 그런 거 없어. 그냥 사는 거야….”(동아)

MBC 드라마 <글로리아>는 서글프다. 변두리 나이트클럽과 그 앞 포장마차를 무대로 살아가는 비주류 인생들이 주인공이다. 미끈한 재벌2세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도 ‘세컨드’의 아들. 서글픈 인생이긴 마찬가지다.

사교육비 늘리는 경쟁위주 교육
 

<경향신문 DB>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이야기했다. 공정한 사회란,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했다.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는 사회,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라고도 했다. 좋은 얘기다. 이런 사회가 실현된다면 진진과 동아도 ‘잉여’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 수 있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공정성’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최근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연합뉴스 8월16일 보도). 지역균형선발 전형 폐지론자들은 이 제도가 수학능력이 충분치 않은 지원자를 합격시켜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지방 학생을 배려하기 위해 우수 학생의 기회를 빼앗는 ‘불공정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 전형을 옹호하는 이들은 지역격차로 누적된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종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자 우대정책)이란 점에서 ‘공정한’ 제도라고 반박한다. 양쪽 모두 공정성을 이야기하지만, 각각이 주장하는 공정성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의 구체적 그림이 궁금하다. 그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실천의 예로 ‘활기찬 시장경제를 위한 규제 개혁’과 ‘사교육비 절감을 포함한 교육 개혁’을 들었다. 규제 개혁이란 뭔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에서 규제 개혁은 규제 완화와 사실상 동의어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 성장이 서민경제 활성화로 연결된다는 논리에 따라 집권 초부터 (부자)감세와 (기업)규제 완화에 나섰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들이 규제 강화에 나설 때도 꿋꿋이 제 갈 길을 갔다. 결과는? 경기지표는 회복되었으나 일자리는 생기지 않고 양극화는 깊어졌다. 교육 개혁도 다르지 않다. 자율형 사립고와 일제고사로 대표되는 경쟁 위주 교육은 사교육비를 절감하기는커녕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절망으로 내몰았다. 이 사회는 공정한 사회인가?

8·8 개각 이후 이명박 정부는 ‘영남 색’이 더욱 짙어졌다. 대통령·국회의장·국무총리·여당 대표가 모두 영남 출신이다. 4대 권력기관장도 검찰총장만 비영남(서울) 출신일 뿐, 국정원장과 국세청장(후보자)·경찰청장(후보자) 등 3인은 영남 출신이다. 이 사회는 공정한 사회인가?

숱한 불법행위 저지른 장관후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8년 동안 5차례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했다. 더불어 양도소득세 회피 의혹, 땅 투기 의혹, 부인의 위장취업 의혹도 받고 있다. 다른 총리·장관·청장 후보자들의 의혹까지 일일이 거론하기엔 지면이 모자라지만, 한 가지는 묻고 싶다. 명백한 불법행위로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낸 사람이 고위공직에 오른다면…이 사회는 공정한 사회인가?

이달 초 휴가를 떠난 이 대통령이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독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청와대는 “해당 도서는 참모들이 올린 추천도서 목록에 있었을 뿐이며 대통령이 휴가지에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일독을 권한다. 만약 읽고도 공정한 사회에 대해 앞뒤 맞지 않는 논리를 폈다면, 찬찬히 재독하길 권한다. ‘공정한 사회’, 결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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