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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냉골 도서관

opinionX 2019. 2. 14. 11:29

독서하는 사람을 ‘선비’라 부르고, 결혼한 남자에게 ‘서방(書房)’이라는 우아한 호칭을 부여한 것은 글 읽는 일을 높게 치는 유교 사회의 영향이다. 그러나 선비가 독서인의 정체성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추위는 독서의 가장 큰 훼방꾼이었다. 이덕무가 ‘<논어> 한 질은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쌓아 놓고 <한서>는 나란히 잇대어 이불로 덮고서 글을 읽었다’(‘이목구심서’)거나, 남산골 딸깍발이가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이희승, ‘딸깍발이’)고 별렀다는 이야기는 겨울 독서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최근 서울대 노조의 ‘도서관 난방 중단’ 파업을 놓고 말이 많았던 것은 유교의 숭문(崇文) 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언론이 만들어낸 ‘냉골 도서관’이라는 용어는 산골의 겨울바람만큼이나 몸을 오싹하게 한다. ‘냉골 학생회관’ ‘냉골 체육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장소가 서울대의 도서관이라는 점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파업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공부해 들어간 대학인데, 도서관 난방을 중단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터이다. 서울대생, 그리고 도서관 이용자는 특별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민의식도 한몫했다. 서울대생을 ‘미래 인재’라며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마저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이번 서울대 파업은 우리 사회의 금기마저 짓밟는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했던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의 인식은 그 정점이다. 

‘냉골 도서관’이 간과한 것은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이다.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임금 현실화,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난방 파업’에 들어갔다. 요구는 설득력이 있었고, 파업은 적법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노조의 파업 이유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대신 ‘냉골 도서관’을 앞세우며 학습권 침해를 강조했다. 파업이 이어지면서 노동권에 눈을 떴고, 노동권과 학습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졌다. 다행히 난방 파업은 닷새 만에 끝이 났다. 옛날 글만 읽던 선비는 자신의 사랑방에 군불을 땠던 누군가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보게 됐다. ‘냉골 도서관’ 덕분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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