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후배의 조카는 말간 얼굴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는 열세 살이지만, 몸이 더디게 자라고 있었다. 6학년 교실에서 아이의 친구들이 동생처럼 귀여워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안도했다. 친구들이 따돌리지 않고 어울리니 참 다행이구나. 가족들한테도 친구들에게도 사랑을 받아 아이가 저리 밝구나.

아이가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후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을 때도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잘 지냈으니 중학교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제 엄마 옆에 붙어 앉아 맛있게 밥을 먹으면서 간혹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아이를 보면서 속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열세 살은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듯 내달려 하룻밤이 다르겠지만,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너울너울 움직이는 아이도 있는 거라고. 내가 사준 군것질거리를 받아 들고는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막연히 제각기 다른 빛깔과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장밋빛 세상을 꿈꿨다. 아이가 헤어지면서 제 엄마가 시키는 대로 나를 꼭 끌어안아 줬을 때, 나는 아이의 작은 몸을 품고 아이가 지금처럼 구김살 없이 자라길 막연히 바랐다.

얼마 뒤 후배는 조카의 안부를 전하면서 말했다. 장애 있는 아이들이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좋다는 말은 비장애인들이 장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관점은 아닐까, 조카에게도 정말 좋은 것일지 의문이 든다고.

“아무튼 이제는 조카에게 맞는 교육이 필요한데, 학교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막연하게 아이가 세상과 어우러지길 바란 걸 반성했다. ‘막연’에는 ‘어떻게’가 빠져 있다. ‘어떻게’를 빠트린 건 미필적 고의다. 아이가 넘어야 할 수많은 장애물을 외면한 것이다. ‘막연히 좋을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막연히 나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나을 수 없다. 장애인 학교를 지으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치는 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도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가.

<김해원 | 동화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