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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청년이 주춤주춤 내 옆으로 다가왔다. 15층에 사는 청년은 키가 큰 데다 덩치까지 있어서 옆으로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움찔하게 된다. 청년은 전화번호 여러 개가 적힌 쪽지를 내게 내밀면서 말했다.

“아줌마, 전화 좀 빌려주세요.”

청년은 내가 얼른 휴대폰을 내밀자 고개를 내저으면서 종이쪽지를 내 코앞에 바짝 갖다 댔다. 전화를 걸어달라는 거였다. 청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전화번호는 아빠라고 적혀 있었다. 청년은 아빠와 전화가 연결되자 큰소리로 물었다.

“어디예요? 왜 안 와요?”

서른 살이 넘었을 청년은 예닐곱 살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호기심이 생기면 상대방이 무안하도록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엉뚱한 참견을 한다. 처음에는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슬그머니 겁이 나서 딸한테는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지 말라고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 그 청년이 아파트 놀이터 후미진 곳에서 담배를 핀 중학생들을 혼내는 걸 봤다. 학생은 담배 피우면 안되는 거라고, 놀이터에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청년의 목소리는 제법 단호했고, 표정은 험악해 보이기도 했다. 중학생들은 지나가던 나를 보고는 이상한 아저씨가 괜히 시비라면서 편들어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 사람이 틀린 말을 하진 않아.”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청년의 큰 덩치가 덜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십 년이 넘도록 청년은 별일 없이 이웃으로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청년 대신 전화를 걸어준 날 밤 그의 어머니가 내 휴대폰으로 전화해서 고마워하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애가 어떻게 제 아버지 번호를 알려줬대요?”

내가 전화번호 적힌 종이를 들고 와 보여줬다는 말에 청년의 어머니는 놀라워했다.

“세상에 그걸 어떻게 들고 나갔데. 그럴 줄도 알고….”

아들을 대견해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다른 아들을 키우느라 애면글면했을 어머니의 기뻐하는 목소리에 나도 괜히 흐뭇해서 콧노래가 나왔다. 그 청년 다 컸네, 다 컸어.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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