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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에 내 아이는 제 발로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가을 나는 아이와 함께 한낮 텅 빈 공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빈둥거렸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쫓기듯 달리면서 잔뜩 날이 서 있던 아이는 비로소 어릴 적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학교에 빼앗겼던 아이를 되찾은 것 같아 내내 행복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아이는 그때의 자유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에 묶여있던 아이는 자신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시간을 헤쳐 나가는 것도, 사람들의 편견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는 난생처음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 맨몸으로 부딪치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청소년 삶과 청소년 문학’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만난 스무 살의 청년은 열다섯에 학교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학교에서 버티기가 힘들었다는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뚫고 나가는 중이었다.

“학교 밖에 있는 아이들과 졸업장도 만들고, 졸업 앨범도 만들었어요. 졸업장에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썼지요.”

청년은 힘차고 즐거워 보였다. 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고, 상처 주는 말들을 내뱉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도리어 그런 아버지와 싸우려다 보니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을 좀 더 논리 정연하게 말하게 되었다는 그는 정말 똘똘하게 말을 잘했다.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아이와 그 청년을 보면서 언젠가 들은 혜성의 삶을 떠올렸다. 빛나는 꼬리를 달고 질주하는 혜성은 기체 물질이 다 증발하고 핵만 남게 되면 소행성으로 진화된다. 그러니까 혜성은 찬란했던 찰나를 거친 뒤 광활한 우주에서 새로운 별로 태어나는 것이다. 제 몸을 완전히 불사른 뒤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일년에 학교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수만 명이다.

그들이 혜성처럼 제 열정을 발산하면서 이 우주에서 하나의 존재로 설 수 있도록 이 사회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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