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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어느 동네 오래된 집이 복닥복닥 모여 있는 좁은 골목길에는 작은 책방이 하나 있다. 책방 주인은 처마 낮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눌어붙은 낡은 식당 간판을 그대로 둔 채 그 옆에 책방 간판을 태연하게 걸어놓았다.

메뉴판과 숫자 큰 달력이 매달려 있었을 벽에 책장이 세워져 있는 데다 곰탕이 끓어오르고, 생선이 구워지고, 나물이 무쳐졌을 부뚜막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으니 이곳은 식당이 아니라 책방이 맞다. 오래전에는 식당이었던 곳이 책방이 되고, 그곳에서는 노래를 부르다가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었다는 세 사람의 음악 공연이 열렸다.

책이 진열되어 있던 큰 테이블을 치운 뒤 늘어놓은 의자에 옹기종기 앉은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 앞에 기타를 들고나와 선 이들은 노래처럼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 같은 노래를 했다. 책방 안에 가득 찬 그들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다워서 행여 한마디라도 놓칠까 귀를 기울여야 했다. 셋이 여행을 하다가 만들었다는 노래를 듣던 한 친구는 자꾸 눈물을 훔쳤고, 또 다른 친구는 뒤에서 조용히 화음을 넣었다.

눈이 발개진 친구는 우연히 사게 된 헌 기타를 혼자 익히면서 더듬더듬 노래를 만들어 노래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그의 경력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그는 남쪽 도시 버스정류장 쉼터와 서울에 있는 책방 전속 가수이며, 시골 마을 카페의 주제곡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청해서 제주도 작은 책방의 전속 가수가 되었다. 아마도 그의 두 친구도 저절로 책방 전속 가수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여름 저녁은 내내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했다. 좁은 골목길과 낮은 담벼락은 익숙한데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삶은 낯설었다. 제주도가 좋아 눌러앉아서는 자기 손으로 식당을 고쳐 책방을 낸 이도, 기타 하나 들고 노래 여행을 다니는 이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세 친구는 노래로 이리 말하고 있었다. 낯설게 살아보라고, 그리 살아보니 괜찮더라고. 그래서 익숙하게만 살면서 낯선 것은 구경만 했던 나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던 것이다. 나는 무엇부터 낯설게 살아야 할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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