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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지낸다는 그는 급식실에 비빔 코너가 생긴 첫날, 밥을 간장에 비벼 먹어보고, 고추장에도 비벼 먹어보고, 주먹밥도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를 사뭇 진지하게 했다. 생활하면서 겪은 우스운 이야기 공모에 응모한 글 중 하나였다. 비빔밥을 먹는 데 몰두한 그는 자신이 흔히 말하는 ‘급식충’이 된 것은 아닌가 자문하면서 글을 맺었다. 아마도 우스운 생활 글을 쓰려고 보니 밥을 비비는 데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모습이 퍼뜩 떠올랐나 보다. 또 다른 응모 글 중 하나는 모의고사 볼 때 답안지를 작성하고 깜박 졸았는데, 가위에 눌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혹여 답을 작성하지 않은 건 아닌지 두려웠다는 얘기였다. 글을 쓴 이는 시험 시간에 가위에 눌릴 정도로 잠에 취한 게 우스웠다고 적었다. 200여 편의 글들이 대개 이렇게 쓰는 이들은 생각할수록 우스웠을지 모르지만, 보는 이들은 그다지 우습지 않을 얘기들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웃을 일이 별로 없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응모한 글들을 보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애들이 있어서 위로가 되었어요.”

응모한 글을 함께 심사한 중학교 선생님은 학교에서 점점 따뜻한 웃음이 사라져 간다고 말했다. 자신이 교직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온종일 떠들어서 목이 아파 기침을 하면 얼른 물 한 컵을 내주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도리어 아이들이 낄낄 웃는다며 씁쓸해했다.

“요즘 아이들 웃음 코드는 남을 놀리는 거예요. 남을 깎아내리고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두는 선생님들도 많지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학교에는 다른 이 때문에 진심으로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어른들만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공감’은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고 부딪치고 서로 마음을 교류하면서 훈련되는 감정이다. 무엇이든지 가르치려고만 드는 어른들과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경쟁자들만 만나야 하는 아이들이 ‘공감’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요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웃긴 추억이 하나도 없다는, 그래서 글을 쓰려고 웃긴 얘기를 찾아본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웃겼다는 한 학생의 글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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