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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은 소리로 기억된다. 미얀마라고 하면 양철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 소리를 듣는 게 참 좋았다는 미얀마 친구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얀마가 마치 옆 동네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미얀마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가워 알은체를 하고 싶었다. 거기 비가 자주 내린다지요? 비가 내리면 풀잎에 젤리 같은 빗방울이 맺힌다지요? 내 친구 아세요?
그는 내 친구의 이름을 듣자 잘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20년을 넘게 살다가 미얀마로 돌아간 동화 작가였다. 그를 만난 곳은 그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출판기념회였다.
“어느 날 내 마음이 내게 말했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어.”
스무 살의 청년이었던 그는 마흔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곱던 누나는 할머니가 되어 동생을 맞아줬다. 조카들은 삼촌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돈 좀 벌어서 집 한 채쯤은 지을 줄 알았다가 빈 가방을 들고 왔다는 걸 알고는 실망한 눈치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사회단체에서 일했어요. 그러면서 미얀마 친구들과 힘을 모아 미얀마 난민들이 머무는 매솟 마을로 책이며 학용품을 보냈어요.”
그는 군사 정권의 탄압으로 미얀마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도, 공부할 수도 없는 게 눈에 밟혔다. 그래서 한국 친구들과 미얀마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펴내는 ‘따비에’ 모임을 만들었다. 따비에는 미얀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데, 미얀마 사람들은 그 나무가 평화와 행복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한국 그림책을 미얀마 말로 번역해 책을 펴내는 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어요. 그 일을 하면서 미얀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는 세상의 어른들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면서 선뜻 나선 친구들을 잊지 못한다. 그 친구들 덕분에 미얀마에 따비에 도서관을 지었다. 그는 책에 사인을 해주면서 한글로 ‘평화’를 적었다.
그의 ‘평화’가 미얀마와 세상에 비처럼 내리길, 새해에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평화롭길.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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