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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벌어진 그 참혹한 겨울을 보낸 뒤에야 높은 곳에 올라선 사람들이 보였다. 세상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자꾸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스스로 지은 망루에, 철탑에, 타워크레인에, 굴뚝에, 옥외광고판에, 세상은 위태롭게 쌓아 올린 바벨탑이었다. 단단히 딛고 서 있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긴 이들은 허공에 올라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는 난간에 제 몸을 묶고 소리쳤다. 여기 사람이 있다! 서울시청 앞 18m 철탑에 올라 9시간이나 고공농성을 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도 똑같았다.

“쫓겨난 지 1000일,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들이 농성을 하는 공장 빈터에는 빛바랜 천막이 늘어서 있었다. 세상과 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막사는 허술했지만, 제 몸으로 부딪쳐 싸워온 이들의 몸놀림은 가벼웠다. 오랫동안 단식 농성을 한 이는 천막 뒤에 있는 컨테이너 위에 걸터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작은 몸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지만,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희미하게 웃었다.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싸운 적이 없는 사람은 그들이 무슨 힘으로 이리 오래 버티고 싸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함성을 지르는 틈틈이 아이들을 돌봤다. 컨테이너 하나는 아이들 공부방이었다. 엄마들은 싸우고,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은 그곳에서도 자라고 있었다.

그 아이들도 이제는 청년이 되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십 년의 세월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만난 청년은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의 아들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어요. 마석 모란공원에 계시지요.”

청년을 소개한 이가 슬그머니 일러준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에 걸린 것을 한동안 감춘 채 싸움에 나섰던 조합원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청년의 해맑은 얼굴이 고마워서 자꾸 힐끔거렸다.

“내가 너 어릴 적부터 봐 왔는데, 모를 게 뭐가 있어?”

아이는 혼자 자란 게 아니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 봐준 사람들…, 한겨울 낮 볕이 따사로웠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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