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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이 있는 도시에 아파트를 얻었다는 부모님 말씀에 우리 형제들은 텔레비전에서 본 아파트가 복닥복닥 서 있는 강남의 어딘가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삿짐 트럭은 식당과 술집이 늘어서 있는 복잡한 골목을 요령 있게 빠져나가 이층짜리 집이 서로 등을 붙이고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좁은 골목을 비틀비틀 올라가 비탈진 자드락에 덜렁 서 있는 4층짜리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한 동밖에 없는 아파트의 오른쪽 외벽에는 칠성아파트라고 씌어 있었다.

“여기 사이다 회사가 지은 거네.”

실없는 동생은 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이다를 꽤 팔았을 텐데 아파트를 고작 이렇게 지었을까 싶었지만, 시골 친구들한테 새 주소를 불러주면서 사이다 회사의 그 칠성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아파트를 지은 사람 이름이 김칠성이란 걸 알게 된 뒤에도 친구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 가족들은 생애 처음으로 살게 된 아파트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달랑 철문 하나에 의지해 안팎으로 나뉘는 것도, 여름이면 단수가 되어서 양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얻어오는 것도, 무엇보다 꼼지락만 하면 시끄럽다고 아래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위로 쫓아 올라왔다.

“어른들 어디 가셨나? 학생들이 공동생활하는 데 이렇게 떠들고 야단법석을 떨면 안 되지. 교양 없게….”

‘교양’이라는 낱말을 평소에 들어본 적도 없는 우리 형제들은 아주머니의 교양 있는 말투에 감탄했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떠들 때마다 교양 아주머니 올라오시겠다면서 낄낄거렸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교양 아주머니와 친해지면서 더는 교양을 운운하는 날 선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머니는 계모임의 초대 회장인 교양 아주머니가 경위 바른 사람이라며 아주 좋아했다. 우리는 3년쯤 살고는 그곳을 떠났지만, 교양 아주머니는 지금껏 칠성아파트에 살고 있다. 여전히 칠성아파트 계모임에 나가는 어머니는 팔순 생신을 치른 회장님 허리가 구부정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고 보니 칠성아파트에 살았던 아주머니들은 모두 할머니가 되고, 아이들 또한 늙어가고 있다. 그래도 칠성아파트는 튼튼하게 버티고 있고, 그곳에 끝까지 남아 있는 교양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아직 카랑카랑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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