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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도시에서 만난 그는 10여년 전쯤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으레 ‘순’이나 ‘숙’을 이름 끝에 붙여야 하는 줄 알았던 시절을 얘기했다. 나도 그와 같은 시절을 살았으니 뻔히 아는 일이었다. 교실에는 늘 앞 글자만 다른 ‘숙’들이 대여섯씩 꼭 앉아 있었고, ‘숙’들과 혼동하기 쉬운 ‘순’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나야? 너야?” 하던 때가 있었다. ‘숙’이나 ‘순’들은 드라마 주인공으로나 나올 것 같은 도회적인 이름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도 자라는 내내 자신의 이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이름 뒤에 붙은 순할 ‘순’을 떼어버리고 개명했다. 어쩌면 매사 소극적이었던 게 이름 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이름을 바꾼 뒤 정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여자라면 순하고 착해야 세상 살기 좋을 거라고 믿었던 과거에서 그는 스스로 걸어 나온 셈이었다. 

그와 함께 나온 길에는 흰 벚꽃이 눈처럼 난분분 흩날리고 있었다. 길 양쪽으로 밑동이 꽤 두꺼운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옛날 이 길의 이름은 전군가도였다. 일제강점기 때 놓인 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였다. ‘숙’과 ‘순’이 많았던 초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은 일제가 길을 내줬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는 이 길을 닦느라 땅을 억지로 내놓아야 했던 이들의 눈물도, 붙잡힌 의병들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한 일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일제가 이 길로 우리 쌀을 실어 날라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다.  

‘수탈의 길’이었던 길은 1970년대에 오로지 번영만 외치던 세태를 반영해 ‘번영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어쩌면 세월이 흐른 뒤 이 길은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될지 모른다.

무심히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이 길을 걸었을 수많은 이름을 가진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지키며 살았을까? 벚나무 밑동이 굵어지는 동안 보굿처럼 거친 손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다 꽃잎처럼 사라진 이름들, 그리고 앞으로 사라질 이름들. 그들의 봄날 어느 하루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길.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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