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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천문기술 발전과 제도혁신을 도모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임신한 여자노비에게 산전휴가 30일과 출산휴가 100일, 남편에게는 출산휴가 30일을 주어 당시의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복지제도를 소개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 시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 설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왕조실록과 역사연구 등에 의하면, 조선 태종 대에 설립된 명통시라는 장애인단체가 있었는데, 이는 독경사(경전을 읽고 외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나라가 설립한 조직이었다. 명통시에 소속된 시각장애인 독경사들은 국가행사에서 독경을 담당하고 대가로 쌀과 베를 지급받았다고 한다. 

평생 척추장애인으로 살았지만, 장애의 벽을 넘어 명성을 떨치며 귀감이 된 허조라는 분이 있다. 그는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개국 후 네 임금(태조·정종·태종·세종)을 섬기며 법전을 편수하고 예악제도를 정비한 인물로, 세종 때에는 예조판서·이조판서와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지내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정창권 교수의 저서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에 의하면, 세종 때 관현맹인(관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던 시각장애인)에게 장악원의 일반 악공에 준하는 직책과 녹봉을 주었다고 한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한국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 전기의 음률가인 박연은 관현맹인들을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조 때에는 신체활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도록 오늘날의 근로지원인과 같은 부양자를 지원해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장애인 제도는 양반사회라는 당시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오늘날의 장애인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인이 장애로 인한 어려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그간 정부는 7·9급 공채의 장애인 구분모집제도, 중증장애인 경력경쟁채용을 통해 공직 내 장애인 채용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확대독서기와 점자프린터,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수작업의자,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증폭장치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보조공학기기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로 인해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 공무원에게 근로지원인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사정 때문에 공급상황이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공직 채용을 확대하고 근무지원사업을 늘려가야 한다. 공공분야이건 민간분야이건 장애인이 자립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노력이 배가되어 진정한 포용사회가 하루속히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김판석 | 연세대 교수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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