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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광주에 간 건 처음이었다. 시내 곳곳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금남로에는 전야제가 치러질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길을 돌아가야 하는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승객을 힐끔대면서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좀 하지, 엥간히들 한다요. 질문인 것 같았는데, 나는 그 말의 진의를 알 수 없어 대답하지 못했다. 행사 준비로 분주한 시내 상황은 안중에 없이 빨리 달리라고 재촉한 외지 사람을 탓하는 것인지, 정말 이제 그만 과거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안타까움인지….

나는 문득 몇 년 전 만난 교사가 떠올랐다. 국어 교사들의 독서모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쓴 1980년 오월을 배경으로 한 동화에 대해 얘기했다. 그해 봄을 모를 리 없는 교사들에게 하는 얘기라 별스러울 게 없었다. 글을 쓰려고 광주에 머물면서 찾아다닌 오래된 골목과 없는 게 없던 양동시장과 포장마차에서 사먹은 기막히게 맛있는 호떡과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말하기 꺼려하던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에 대해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질문을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든 교사의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을 칠판에 적어도 될까요?”

설마 수학이나 물리학 공식을 적으려는 건 아니겠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칠판 앞에 선 교사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가 10여분에 걸쳐 칠판에 빼곡하게 쓴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인터넷에 떠도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낭설이었다. 그는 쓰기를 끝낸 뒤 물었다.

“이런 자료를 본 적이 있나요?”

그 질문의 진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날 나는 그 교사에게 칠판을 직접 지우도록 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실을 외치는 간절한 목소리보다 거짓을 설파하는 목소리가 더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심지어 그가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라서 섬뜩했다. 그의 오월은 여전한 것일까? 빗방울이 떨어지는 광주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그의 거짓된 오월을 염려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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