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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 새 도서관이 생겼다. 1년 전에 이사 올 때 한창 공사 중이던 도서관을 보면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개관을 기다렸었다. 바로 옆에 호수가 있고 숲도 있고 공원도 있어서 이런 도서관이라면 소풍처럼 놀러다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개관날만 기다리다 설레며 가보았더니 아직 문도 열기 전이었다. 대신 개관식 준비가 한창이어서 난생처음 기념식수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리본 단 삽이 눈에 띄었다. 나무는 벌써 심어져 있었고, 그 앞에 현직 시장의 이름이 담긴 명패도 이미 붙어 있었다. 그 명패를 보고서야 그 도서관은 우리 동네 도서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옆 동네 도서관. 당연히 명패 속 시장의 이름도 우리 동네 시장의 이름은 아니었다. 그날 옆 동네 시장이 황금빛 리본을 단 삽으로 흙을 푸는 것을 보았다.

내가 사는 집은 시 경계선에 붙어 있어서 매일 다니다시피 하는 마트도 옆 동네, 다른 시에 있는 마트다.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툭하면 시 경계선을 넘어 우리 동네와 옆 동네를 오고간다. 물론 시 경계선이라는 게 신고하고 넘어가고, 허가받고 출입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그건 그냥 편의상 그어진 선이거나, 필요한 사람이나 알 필요가 있는 구획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불편한 점도 있다. 택시를 타면 이해할 수 없는 할증이 붙는다. 겨우 요기서 조기 가는데 시 경계를 넘기 때문이다. 쓰레기봉투를 살 때도 주의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옆 동네에 낸 세금으로 우리 동네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 된다.

도서관 대출증을 만들면서 이 동네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동네는 달라도 경기도민이라 괜찮은 모양이다. 내 주소지가 경기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종종 내가 경기도민이 맞긴 한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절반쯤은 서울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살아가는 일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이랄 게 없는 사람이지만 내 가족의 직장은 서울에 있다. 신분당선을 타고 강남에 가서 2호선을 갈아타고 출퇴근을 한다. 내 볼일도 대부분 서울에서 있으니 같은 동선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지하철에 올라타서는 신분당선은 왜 요금체계가 그렇게 복잡한가, 왜 그렇게 비싼가 생각하곤 한다. 신분당선 일은 서울 일인가, 경기도 일인가도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할 일이 없으니 하는 생각이다. 보통 때는 집세나 집값과 관련하지 않고서는 내가 어디 사는지를 생각할 때가 거의 없다. 지방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당황스러운 이유다.

내가 어디 사는지도 별로 주의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내가 사는 곳의 대표를 뽑아야만 한다. 그것도 한꺼번에 일곱 명이나 뽑아야 한다. 그 일곱 명을 뽑기 위해서는 그 일곱 명의 몇배수인 후보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터이니 숫자로만 생각해도 이게 엄청난 일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들이 받게 될 세비, 내가 낸 세금으로 그들이 할 일들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간혹 뉴스에 보도되곤 하는 그들의 소란과 추태를 떠올려보면 그만큼 그들에게 권한과 권력이 있다는 뜻이고, 그건 다시 말하면 그들이 그만큼 좋은 일, 필요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일 터이다. 교육감과 시장, 도지사 등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니 잘 뽑아야 할 터인데, 믿을 수 있는 후보를 골라내는 건 고사하고 절대로 믿을 수 없는 후보를 찍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데, 나는 어떻게 꽃과 잡초를 구분해 꽃들을 잘 키우고, 내 꽃밭을 잘 가꿀 수 있나.

새로 생긴 도서관 얘기를 조금 더 하자. 새로 생긴 도서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터여서 개관을 하고 며칠 동안은 열람실 안이 시끌시끌했다. 새로 생긴 도서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사항을 건의하는 동네사람들 때문이다. 며칠 동안 책을 읽기에는 좀 소란스러운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보기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우리 도서관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동네사람이 없다면 동네도서관은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겠는가 싶어서였다. 나는 옆 동네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견 하나를 보태기로 했다. 자전거 거치대가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서관에 좋은 책 구입을 요청하는 대신 자전거 거치대를 요청해놓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자전거 타는 취미가 생긴 지 얼마 안된지라 내친김에 공용자전거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제안하고 싶었는데, 그건 도서관에 제안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 어디에다 하나? 그런 공약을 내건 후보자를 찾아야 하나?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후보자를 결정해도 되는 건가? 그렇게 한다면 그건 민주주의의 낭비가 아닌가. 선거란 건 뭔가 좀 더 심각하고 진지한 자세여야 하지 않나.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내 한 표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나는 참 작고, 나는 참 사소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소한 표가 모여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구호처럼 여겨지고 교과서식의 교훈처럼만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사소한 개인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그 촛불로 나라를 바꾸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게 분명 엄청난 일이기는 하고, 투표도 분명히 촛불을 밝히듯이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겠다.

지방선거가 한 달도 안 남았다. 얼마 뒤면 노는 날이네 생각하다가 노는 날인 거 말고도 생각할 게 많구나 생각해보는 날이다. 평화를 위해, 복지를 위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을 그만 좀 보기 위해. 그 지긋지긋한 좌파 타령 좀 그만 듣기 위해. 전쟁 없는 미래를 위해. 해외여행을 가면 사우스냐 노스냐 묻는 질문에 그만 난처해지기 위해. 자전거를 위해. 도서관을 위해. 재활용품의 원활한 수거를 위해. 미세먼지 없는 환경을 위해. 집값을 위해. 가족 중에 더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없는 나이가 되기는 했지만,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그 아이들 모두의 학교를 위해. 그 아이들의 선생님들을 위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그들의 월급을 위해. 여자를 위해, 남자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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