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월요일 한낮의 서울 광화문은 한적했다. 이른 아침 지하철로 버스로 이곳에 달려온 사람들은 높은 빌딩 숲으로 꼭꼭 숨어버렸고, 점심때 잠시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 그 사람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바쁜 도시는 광화문 한가운데 놓인 영정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 스물넷의 청년을 벌써 잊었을지 모른다.

안전모를 쓰고 마스크를 한 채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적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영정 속의 청년, 그 청년도 그날이 아니었다면 월요일 한낮 자신의 일터에서 점심 한 끼 급하게 때우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아래 서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일하기에 도시는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며,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곳에 없다.

“여기 있는 분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셨어.”

세월호 분향소를 둘러보던 가족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가 영정 속 청년 앞에서 고개를 숙이자 두 아이가 얼른 그 뒤에 섰다. 초등학생 아들은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툴게 향에 불을 피워 영정 앞에 놓았다. 아마 아이는 분향소를 떠난 뒤 부모에게 물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저 형은 일하다가 왜 죽었는가? 아이의 물음에 과연 부모는 뭐라고 답할까? 우리 사회는 고작 나이 스물넷 된 청년이 죽은 이유를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작업장에서 쓰는 손전등조차도 지급받지 못한 비정규직 청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리고 동료들이 딛고 서 있는 곳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외쳤을 것이다. 당신들은 언제까지 모른 체할 거냐고.

해가 떨어지고 광화문을 메운 수많은 빌딩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온종일 분향소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이 아파 똑바로 마주하지 않은 청년의 영정을 바라봤다. 그의 형형한 눈빛이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간절했던 눈빛을 진즉에 세상이 받아줬더라면, 그는 이곳에 이리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이 조금 바뀐다 해도, 그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비통하다.

<김해원 동화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