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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에 이발소를 담은 사진집을 샀더랬다. 여름이면 길가에 수건을 내다 말리고, 겨울이면 창문 틈으로 빼놓은 연탄난로 배기통으로 연기가 품어져 나올 것 같은 오래된 이발소 앞에 흰 가운을 입고 서 있는 이발사들은 모두 멋쩍어하고 있었다. 이발소를 하면서 닭집도 하는, 그래서 이발소 간판에 닭이 떡하니 그려져 있는 사진은 잊히지 않았다. 작가는 그 사진에 이리 글을 달아놓았다. 이발소보다 닭집이 잘되는 것 같더라고. 나는 카메라 하나 들고 시골 마을을 돌아다녔을 호기로운 젊은 작가를 떠올리며 부러워했다.

전주에 일 보러 갔다가 틈이 생겨 사진 전시회를 찾아갔다. 전시관은 담장과 담장이 이어진 좁은 골목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지붕 낮은 집이었다. 페인트칠을 한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옹색하지만 어린아이들 뛰어노는 데 부족할 것 없는 마당이 있고, 온 식구가 수박을 갈라먹었을 마루가 있고, 연탄을 쟁여 놓았을 광이 있었다. 그곳을 사진 전시관으로 꾸민 관장은 마치 오래전 그 집에서 장독대를 오르내리고 마당에 꽃을 심고 아이들을 길러냈을 것 같은 인자하면서도 단단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여러 권의 사진집을 가리키면서 수줍게 말했다.

“이게 이십년 동안 만들어낸 제 작품집이죠. 제가 쉰 살에 사진을 배웠어요.”

그가 가리킨 사진집들 틈에는 내 눈에 익숙한 이발소를 담은 사진집이 있었다. 그가 내가 부러워한 ‘젊은 작가’였던 것이다. 그는 사진을 배우고는 맨 먼저 배고픈 시절 ‘풍요’의 상징이었던 정미소가 쇠락해 가는 모습을 찍었다고 했다. 정미소 다음에는 이발소 그리고 구멍가게를 찾아다녔다. 그의 사진을 보면서 ‘카메라는 우리 기억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기억에서 차츰 잊히다가 끝내는 소멸할 것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과장되지도, 냉소적이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찍어낸 그의 사진이 곧 우리의 기억이 될 것이다. 그가 준 <근대화상회>를 며칠 동안 구경 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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