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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그는 없었다. 그는 그곳에 당당히 있어야 했다. 그의 작품이 상을 받아서 북 콘서트가 열린 자리였으니까.

7년 전 그를 처음 봤던 곳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상식 자리였다. 오래되어 언저리만 남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 스물다섯 살의 그는 쑥스러워하며 배시시 웃는 모습이다. 취업을 하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첫 작품으로 상을 탄 그는 담담했다. 첫 발걸음을 뗀 그의 모습은 금방 잊혔다. 그가 그 뒤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얼굴 붉히는 볼 빨간 이십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깊은 절망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 작품에서 그는 분노한 소년이었고, 평생 농사를 짓다가 상경해서 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된 노인의 이야기를 넉살 좋게 풀어 놓은 작품 속에서 그는 모진 풍파를 이겨낸 위풍당당한 할머니였다.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 군상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그의 노련함이 놀라웠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쓴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는 사람을 통 만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만나는 편집자만이 간간이 소식을 전해줬다. 그의 안부는 한결같았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쓰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젊은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겠구나. 그가 묵묵히 걷고 있는 곳이 거대한 도시인지, 광활한 우주인지, 무엇인지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작년에 원고지로 3000장이나 되는 긴 작품을 썼다. 묵직한 책을 받고는 도무지 작가의 얼굴이 짐작되지 않았다. 경구처럼 잇닿는 문장과 무섭게 파고드는 집요한 인물들 속에서 그는 어디쯤 있는 걸까. 궁금해도 그를 만나 물어볼 수는 없으려니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를 만날 줄 알았다.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북 콘서트가 치러지는 날, 그의 빈자리가 가슴 아팠다. 그의 작품을 얘기하고 작품 속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부재가 와 닿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 글이 참 좋다는 말을 끝내 못하고 말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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