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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찌감치 깨달았다고 했다. 사는 게 만만하지 않구나. 삶의 무게는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매달고 밤새 온 도시를 질주한다고 해도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한 달 내내 수 백 개의 햄버거를 만들어도 감당하기 어렵구나. 열일곱 살에 집을 나와 2년을 혼자 버텼다는 그는 그래도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용케 들어간 대학이 수도권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수월하게 졸업할 수 있었고, 단박에 짱짱한 중소기업에 취직도 했으니….

정말 간절히 바라므로 우주가 도와준 것이었을까? 한 달 가까이 야근을 하고, 지난밤에는 철야까지 했다는 그의 퀭한 눈을 보면 그쪽보다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만고의 진리 쪽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는 자꾸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방황하는 애들을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 까놓고 얘기해 주죠. 고생길이라고, 정신 바짝 차리라고.”

스물세 살 때부터 그는 토요일마다 다문화 공부방에 나왔다. 5년 동안 그는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낯설어 늘 빙빙 돌던 꼬맹이가 중학생이 되어 제 여자 친구 사진을 보여주고, 툭하면 토라져서 애를 먹이던 아이가 의젓하게 동생들을 챙기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그는 자신도 함께 자랐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이 늘어난다. 아이들이 행여 자신처럼 방황하지는 않을까, 아이들한테 쏟는 관심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잘하고 있다. 올해 봉사자들 대표를 맡은 그는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공부방에 나왔고, 아침을 거르는 애들한테 떡을 주는 게 마음에 걸린다면서 주먹밥을 직접 만들어 왔다. 누군가 그 주먹밥을 ‘진짜 사나이 주먹밥’이라고 부르자 그는 멋쩍어했다. 진짜 사나이가 뭔데? 글쎄 그건 뭔지 모르겠지만, 그가 진짜 어른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쓸쓸한 도시를 질주했을 아이는 이제 자신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꼿꼿하게 가지를 뻗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덜 노력해도, 조금 늘쩡거려도 그 가지들이 튼튼하게 잘 자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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