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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만화의 계보는 쾨쾨한 냄새가 밴 동네 만홧가게에서 시작된다. 서로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아이들은 좁은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연신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겼다. 해 질 녘이면 아이들은 하나둘 빠져나가고, 남은 아이들 중 몇은 어머니한테 붙들려갔다. 나는 그 만홧가게에서 독고탁과 비둘기 합창을 뗐으며 숱한 순정만화들을 봤다. 그 시절 순정만화를 많이 본 여자아이들은 으레 공책 표지 뒷면에 간장종지처럼 큰 눈에 다이아몬드 같은 게 박힌 여자를 그리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짝은 온종일 눈 큰 여자를 그려냈다. 부지런히 손만 움직일 뿐 좀처럼 말을 하지 않던 그 아이는 나중에 만화가가 될 거라고 수줍게 말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만화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만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봐온 친구 조카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열렬히 응원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탁월한 그림 솜씨를 발휘했으며, 재치 있고, 마음이 깊어 좋은 만화가가 될 거라고, 그의 가족들만큼이나 믿고 있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굳이 대학에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면서 휴학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앉았을 적에는 이제나저제나 그의 만화를 기다렸다.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가 오랫동안 구상하고 있는 거라면서 보여준 작품은 역시 훌륭했다.

“돈을 벌려면 웹툰을 안 할 수 없어요. 제가 원하는 만화를 만들 때까지는 뭐든 해야지요.”

그는 웹툰을 연재하면서 많이 부족하다고 부끄러워했지만, 나는 코인을 사서 틈틈이 그의 작품을 찾아봤다. 코인 값을 결제하면서 문득 누군가의 꿈과 수고로움에 대놓고 값을 매긴다는 게 좀 서글펐다. 그리고 그 서글픔은 최근 한 웹툰 연재 서비스업체가 작가들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체념으로 바뀌었다. 아, 우리는 창작의 기회를 돈으로 권력으로 관리하는 사회에 살고 있었지. 그런데도 나는 독자로서 오늘도 새벽까지 작업하며 고뇌했을 젊은 만화가가 원하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날을 기다린다. 부디 그는 체념 따위는 하지 않길 바라면서.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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