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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에서 철암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기차 건널목을 건너 이어진 길에는 간간이 짐을 실은 큰 트럭만 경적을 울리면서 내달렸다. 철암으로 들어가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오래전에 시간이 멈춰 있었다.

한때 그러니까 탄광촌 개들은 입에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석탄 산업이 번성했던 시절에 철암은 태백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지만, 그 명성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철암역 맞은편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시장은 높은 건물이 제법 늘어서 있었는데, 철암천에 세운 기둥에 지탱하고 있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허술했다. 그곳이 밤마다 대낮처럼 환히 불을 밝힌 번화가였으며, 식당이고 술집이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철암 미로마을에서 내려다본 탄광역사촌. 박민규 기자

텅 비어있는 시장과 달리 철암역은 아직 건재했다. 태백선의 시작이면서 끝인 그곳은 매끈한 긴 선로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었다. 그 선로 위로 화물 기차가 밤낮없이 드나들면서 전국에 석탄을 실어 날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기억 속에 탄광촌은 사북 사태와 갱도가 무너져 광부가 매몰되었다는 속보가 전해지는 어둡고 무거운 곳이다.

“사람들이 탄광촌에 살았다고 하면 다들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태백에서 자란 그는 겨울에 눈이 어른 키만큼 쌓인 날이면 오빠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굴을 파면서 놀았다고 했다.

“눈이 오면 우리 동네 애들이 모두 다라를 들고나와서 그걸 썰매처럼 타고 다녔어요. 얼마나 재미났는지 몰라요.”

그의 기억 속에 있는 탄광촌은 시커먼 석탄 가루나 흩날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를 통해 들은 그곳의 봄꽃은 아름다웠으며, 여름은 낮잠 자기 좋을 만큼 서늘하고, 일찍 찾아오는 겨울은 더없이 즐거웠다. 모든 삶이 그렇듯이 그곳의 삶도 비극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그는 언젠가 어린 시절 뛰놀았던 탄광촌의 모습을 담은 그림책을 펴낼 거라고 했다.

내가 본 쓸쓸한 철암이, 탄광촌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찬 신나는 곳으로 되살아나길 기다린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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