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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차가 막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할 때 그들은 구세주였다. 그들은 전화만 걸면 한걸음에 달려와 서울 전역을 누비며 30분 이내로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의 활약 덕분에 제때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쫓아와 죽일 것처럼 다그치는 이들로부터 봉변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사무실에 자주 오는 택배기사는 오랫동안 용달차를 몰던 분이었다. 큰 사고가 나는 바람에 평생 모은 돈을 다 쏟아부었다는 그는 배운 게 달리는 것이라 택배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분은 때때로 우리 일이 더뎌서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막혀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 줬으며, 일을 끝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에게 내가 바람처럼 달려줄 테니 서두르지 말라며 느긋하게 기다려주기도 했다. 그 시절 그는 우리의 어벤저스였다.

“오빠가 음식 배달 일을 해요. 눈이 오면 정말 하루 종일 불안해요.”

곧 첫 아이 출산을 앞둔 이의 말을 들으면서 손자를 볼 나이에 오토바이에 올랐던 어벤저스가 생각났다. 그를 오래전에 잊은 나는 늦게 배달하는 누군가를 탓했으며, 비 오는 날이든 눈 오는 날이든 음식 배달을 태연히 시켜놓고는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았다.

“오빠 얘기를 들으면 정말 별사람이 다 있어요. 배달이 늦었다고 문을 아예 안 열어주는 사람도 꽤 많아요.”

퇴짜 맞은 음식은 배달기사의 몫이라고 했다. 용역 회사를 통해 일하는 그는 자신이 싣고 갔던 음식값을 고스란히 자신이 물어내야 한다. 짜장면이 불었다고 되돌려 보내면 불은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건 배달을 한 사람인 것이다.

“한 번은 햄버거를 배달했는데, 식었다면서 안 받아주더래요.”

그날 한 아이의 아빠가 될 배달기사는 햄버거는 가게에서 드셔도 뜨겁지 않을 거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고 했다. 그는 어벤저스가 아니라 그냥 무기력하게 당해야 하는 ‘을’이었던 것이다. 그가 느꼈을 서러움은 모든 을이 경험한 것이리라.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벌레로 변했다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어쩌면 우리 사회 ‘을’의 모습을 예언한 것은 아닐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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