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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재심>에서 다뤄진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범에게 15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사건 당시 유일한 목격자였던 ㄱ씨는 되레 범인으로 지목돼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ㄱ씨가 겪은 부당한 처사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간 수사관의 과오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강압에 의한 ㄱ씨의 ‘거짓 자백’을 걸러내지 못한 사법시스템에 의해 범죄가 완성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라는 사회과학적 전제는 인지과학과 관련된 각종 연구를 통해 오래전에 이미 붕괴됐다. 연장선상에서 범죄에 연루된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뿐 아니라 범죄를 수사·기소하고 이를 재판하는 형사사법의 당사자들도 집단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2017년 개봉한 영화 <재심>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리 법제는 1차 수사기관을 직접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구비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기소를 담당해야 할 검찰에 직접 수사권까지 부여했다. 기소의 독점과 편의, 수사지휘권, 공소취소권,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모두 한 집단에 주면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집단이성을 상실할 경우 권한이 남용될 여지가 있다. 집단이성이 집단오류로 변질됐을 때 얼마만큼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됐다.

최근 이런 집단오류를 구조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사법개혁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법집행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동일한 목표 앞에 앞다퉈 제시하는 서로 다른 의견들을 보면 문득 시민들을 냉소적 방관자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시민의 냉소는 곧 개혁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을 민감하게 지켜봐야 한다.

필자는 사법개혁의 주체는 시민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시민들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들을 제지하고자 입법자로 하여금 법을 만들도록 한다. 또 경찰과 검찰 같은 법집행기관에 시민이 만든 법의 지배를 받는 조건에서 시민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도록 한다. 그런데 법집행기관이 집단이기주의에 빠지거나 다른 조직의 하수인이 돼 본래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은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불과 1년 전 우리 시민들은 국정을 농단한 정부 수반을 법대 앞에 세웠다. 제 기능을 못하는 정부에 대한 저항은 당연한 권리이자 눈을 감고 지나쳐서는 안되는 사명이다. 법집행기관이 저지른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에 비춰봐도 시민들은 법집행기관이 스스로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법집행기관 간에 상호견제 수단을 확보해 인권침해 상황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투명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의 법감정과 공감이 바탕이 된 형사사법시스템 개혁으로 다시는 ‘약촌오거리 사건’과 같은 불운이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충호 | 충남지방경찰청 부장(경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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