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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인쇄기가 밤낮없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마주 오는 사람이 어깨를 옆으로 꺾어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을지로와 충무로의 겨울은 분주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달력 70%를 찍어낸다는 그곳은 가을부터 대목이었다. 밤새 뜬 눈으로 인쇄기를 돌린 인쇄공들이 푸석한 얼굴로 새벽길을 나서면 리어카를 끈 노인들이 골목을 휘저으면서 검은 필름을 수거해 갔다. 필름 속에 새겨져 있던 글씨를 지우고 닦아내서 은을 추출한다고 했다. 필름은 은이 되고, 종이는 돈이 되던 그곳의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인쇄소 한구석에서 납으로 된 활자를 뽑던 문선공들이 사라지고 사식기로 활자를 한 자 한 자 찍어낼 때만 해도 인쇄 밥을 먹던 사람들은 지구에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인쇄기는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디지털이 어쩌고 저쩌고 할 적에도 온종일 필름을 들고 쏘다닌 사람들은 밤이면 골뱅이 가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술을 마셨다.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사진작가였다는 그는 자비를 들여 사진 전문지를 만들었다. 타블로이드판 4쪽짜리 신문은 격월간이었다. 그는 종이 쪼가리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원고를 들고 활자를 찍어주는 사식 사무실과 조판을 해주는 사무실을 직접 찾아다녔다. 간혹 오랫동안 그를 봐 온 편집 기획사 사장들이 자청해서 신문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가 굽은 어깨에 메고 다니는 낡은 가죽 가방에는 늘 신문 몇 부와 원고를 적은 종이가 비죽 나와 있었다. 나는 몇 번 그의 신문을 만들었는데, 그가 쓴 원고는 사진 전문가들이나 알 법한 얘기라서 지루하고 어려웠다. 구독자도 없는 이런 신문을 왜 만드는 걸까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는 때맞춰 원고를 들고 왔고, 인쇄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상심했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뒤로도 인쇄소 골목에서 종종 그를 마주쳤다. 그의 등은 더 굽었고 백발은 숱이 줄어 엉성해졌어도 설핏 본 그의 글씨는 여전히 옹골찼다.

이제 인쇄소 골목에서 그를 볼 리 만무하고, 그를 보면서 안쓰러워하던 인쇄소 골목 사람들도 태반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썰렁한 인쇄소 골목을 걸어가다 보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옛날 사람들 모두 안녕하신지….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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