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내가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일하는 아저씨가 여럿 있었다. 어른들이 ‘사우디에 갔다’는 말끝에 붙이는 형용사에는 대개 안쓰러움이 담겨있었다. 어른들의 오가는 말속에 ‘사우디’는 달걀을 도로 위에 깨트리면 지글지글 익어버리는 뜨거운 태양과 온종일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모래바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 나라 이름을 들을 때마다 모래바람을 뒤집어쓴 채 끝도 없이 이어지는 파이프 위에 듬성듬성 서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아무튼 뜨거운 사막에서 땀 흘린 이들은 집으로 돈을 부쳐서 모래바람은 집이 되고 텔레비전이 되고 냉장고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하면 석유와 잘 나가는 축구팀 하나쯤 사는 건 일도 아닌 거부를 떠올릴 테고, 어른들은 가물가물한 못 먹던 시절 얘기를 더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한테는 잊힌 아니 잊으려고 하는 고달픈 ‘이주 노동’은 지구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김포에 있는 공장에서 몇 년째 일하고 있는 청년은 방글라데시에서 왔다. 다카에서 한참 들어가야 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산다는 그의 ‘이주 노동’은 마치 품앗이와 같다.

“큰형은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일했어요. 형이 번 돈으로 내가 학교에 다니고, 우리 식구 다 먹고살았어요. 지금은 내가 해요.”

그의 서툰 한국말에서 ‘사우디’가 내 귀에 아주 선명하게 박히면서 청년의 까맣고 큰 눈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연대감과 같은 감정이었다. 우리는 모래바람 속에서 일한 이들을 통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청년은 형이 그랬듯이 월급을 죄다 집으로 보내고, 식비로 받는 20만원으로 생활하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일하는 건 좋아요. 가족들이 보고 싶은 게 가장 힘들어요.”

그러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에 몇 번씩 다녀온 우리 동네 아저씨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애들이 보고 싶어서 정말 또 나가고 싶지 않다고. 거친 모래바람보다 낯선 땅의 서먹함보다 쉼 없이 되풀이되는 노동보다 힘든 것은 여전히 그리움이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