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여름이었다. 짧은 머리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그는 언뜻 보면 사내아이 같았다. 목소리도 크고 변죽도 좋아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주절주절 제 얘기를 잘했다. 그는 학교 난타 동아리에서 활동하는데 공연 준비 때문에 일요일도 쉬지 못한다면서 못이 박인 손바닥도 보여줬다. 그가 낯을 가리지 않는 덕분에 나도 쉽게 그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그는 열여섯 살이 대개 그렇듯이 때로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굴다가도 이내 기가 꺾였다. 경찰이 될 생각이라면서 열심히 공부해 성적을 꽤 올리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댄스학원에 등록하기도 했다. 그는 온탕과 냉탕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주변 어른들은 그를 불안하게 바라봤다. 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은 학교 밖으로 나올 때 어른들은 그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낙심했다. 그가 남자를 만나고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 어른들은 그가 자신의 삶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지레 겁먹었다. 나도 그랬다.

그가 아이를 낳던 날, 병원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그가 아기 사진을 보내면서 언제 아기 보러 올 거냐고 하는데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딱히 급할 일이 없는 나는 함께 가기로 한 이가 바쁘다고 하는 게 내심 반가웠다. 결국 더위가 꺾이고 아이의 백일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우리는 쇼핑센터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소를 정한 건 그였다. 식당에는 그가 맨 먼저 와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그를 보자 가슴이 먹먹했다. 지독히 더운 여름 내내 그가 키워낸 아이가 꼬물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여기 너무 시끄럽죠? 그런데 수유실 있는 식당이 여기밖에 없어요. 공공시설엔 다 수유실 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는 여전히 씩씩했다. 그는 능숙하게 아이를 돌봤고, 아이가 칭얼대도 싫은 내색 없이 다독였다. 그는 아이가 조금 크면 기술을 배울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었다. 그보다 오래 살았다는 나는 뭘 그리 겁냈을까. 그가 제 손을 보고 있는 아기 사진을 보냈다. 나는 할머니처럼 답해줬다. 제 손 갖고 노는 아이가 순하단다.

<김해원 | 동화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