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의 기억은 세기말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멀쩡한 줄 알았던 다리가 끊어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의 20대는 장렬했다. 의류 회사 디자이너였던 그의 월급은 고작해야 40여만 원. 쥐꼬리에서 그나마 딸 혼수비를 마련하려고 계를 시작한 어머니에게 절반을 떼어드려야 했다. 하지만 버스비 말고는 돈 쓸 틈도 없이 바빠서 늘 월급이 남았다. 야근과 철야는 밥 먹듯이 하면서 피팅 모델 노릇까지 하느라 정작 밥은 많이 먹을 수 없었던 시절. 그는 노력만큼은 안정한 세상을 보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디자이너로 실력이 쌓이면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내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절 그는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담보 잡혀 산 셈이라고 했다. 아이가 있는 직원한테 ‘네 아이도 너 닮아 머리가 나쁘겠다’는 둥 인격 모독을 일삼는 상사들의 독설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라 여겼고, 날마다 전국 매장의 매출을 취합해 등수를 매겨 공개하는 회사의 비정함을 공정한 경쟁으로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회사에, 일에 얽매인 노예였어요.”
일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내건 가게를 냈지만, 독립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다. 일 년 내내 단 하루도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스스로 정한 시각에 맞추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낸다. 평생 몸에 밴 습성이 하루아침에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즐기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일에만 죽자 살자 매달리지 않아요. 일 말고도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부당한 것을 참지 않고 말하는 게 참 좋아요.”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 기억을 꺼낸 것은 요즘 청년들이 일자리도 없지만, 과거처럼 치열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던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작과 다르게 요즘 청춘에게 희망을 걸면서 말을 끝냈다. 그들은 왜 달리는지 알고 달릴 거라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더 잘 해낼 거라고.
그의 말대로 청년들이 그들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부디!
<김해원 | 동화작가>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역사의 증언자’로 기억될 인권운동가 김복동 (0) | 2019.01.30 |
---|---|
[기고]우리말 대신 영어 남발하는 정부 (0) | 2019.01.30 |
[기고]무자비한 71년 낙인을 어찌 배상할 것인가? (0) | 2019.01.30 |
[이지누 칼럼]마음속 덜컹이는 철길 (0) | 2019.01.29 |
[속담말ㅆ·미]‘게으른 선비 책장 세듯’ (0) | 2019.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