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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은 지난 17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제주학살(1947~1954) 당시 불법 연행, 구금당했던 수형인들에 대해 공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존재조차 불분명한 국방경비법을 적용해 평생 동안 불온 인사로 낙인찍혀 왔던 90대 촌로는 이제사 보통 사람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1948~1949년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법원의 재심 공소 기각 선고는 당시 대한민국 군경의 행위가 절차적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모두 무효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획기적 사법 판단이다. 특히 전 대법원장이 국정농단 당사자와 불법적으로 재판을 거래하고, 사법부 불신을 자초함으로써 주권자의 비난과 빈축을 사고 있는 이 안타깝고 슬픈 시절에 제주지법은 사법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제주지법은 1948년 겨울, 이듬해 여름에 걸쳐 자행된 이 극악무도한 공권력의 횡포와 만행이 71년 긴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말하자면 첫 4·3 재심을 무죄 취지로 선고한 것이다. 이들 불법 수형 피해자들에게 가해졌던 당시 형벌이 공소 제기 절차라는 법률 규정을 위반해 아무런 죄가 없던 이들에게 자행된 것이었음을 적시했다. 따라서 제주지법의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 무죄 취지 판결은 인권과 정의의 중대한 승리다. 제주지검의 공소 기각 의견 역시 정의의 수호자다웠다.

이제 누구보다도 주목해야 할 얼굴은 무죄 취지 판결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평생 동안 참으로 흉측한 악법과 불법 재판에 의해 ‘적색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채 침묵과 굴종을 강요당해 왔다. 긴 인고의 세월이 지나 재심 청구를 하고 끝내 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은 이들과 함께 아픔과 통한을 품어 온 가족들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이들 생존 불법 수형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당시 4·3 재판은 불법이며, 판결은 무효이고 잘못된 것이라며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재심 청구는 이들 불법 수형자를 위한 비상구제수단이었다. 4·3도민연대의 집요한 노력과 정성, 헌신적 활동은 4·3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서 4·3의 완전한 해결과 이행기 정의 실현에 일대 전환점을 구축했다. 왜냐하면 4·3 해결은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조치부터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당시 군사재판 판결이 불법이라고 법원에 의해 확인된 이상 4·3특별법 개정 등 후속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희생된 모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이들이 당한 피해의 회복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특히 법무부 장관은 직권 재심 청구를 통해 당시 불법 재판에 의한 피해자들을 일괄 구제하는 조치를 즉각 추진해야 한다. 둘째, 국회는 1948~1949년 군사재판이 모두 불법이었고, 이들 불법 수형인들의 피해 배상, 명예 회복 등을 담은 입법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제 새 출발을 하게 될 4·3 무죄 인사들의 만수무강을 빌며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매우 짧지만 70년 만에 터져 나온 최후 진술이 증명된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늦더라도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많은 가치와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인간실천이다.

<허상수 |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전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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