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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고인은 전 세계 곳곳에서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증언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고취하고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자들의 초국적 연대를 이끌어낸 여성인권·평화운동가였다. 위안부 문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이 추모했듯이 “세상 모든 피해 여성의 깃발”이었다. 고인이 끝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것이 애통할 따름이다.

14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된 고인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고초를 겪었다. 여성인권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1992년이다. 피해 사실을 공개한 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 등에 참석하며 증언을 이어갔다. 2012년부터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전시 성폭력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국경없는기자회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다. 고인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 공청회에서 연설한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었다.

고인은 이승을 떠나는 순간까지 일본의 사죄를 요구했다고 한다. 임종을 지킨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한마디였다”고 전했다. 29일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타계하면서 남은 피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다. 생존자들도 모두 고령이다. 일본은 더 늦기 전에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를 위해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에 나서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은 각종 기록으로 입증된 사안이다. 역사의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한·일 양국관계의 미래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화해가 전제될 때만 기약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도 일본의 몰역사적 행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한국이 주축이 되어 다른 피해국가들과 연대해 일본의 사죄를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관련 기록물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강인하고 용감했던 ‘역사의 증언자’ 김복동 할머니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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