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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작은 시골마을에서 이태 남짓 살았다. 여름이면 철길 옆 수로로 천렵을 나가 마을 청년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아 국수와 수제비를 넣은 ‘털레기’를 해먹고 가까운 서울에서 벗들이 찾아오면 철길 너머 논둑에서 삼겹살과 소주는 다반사였다. 밤 11시가 넘어 정기 운행 열차가 끊기면 탱크나 장갑차 혹은 자주포 같은 무기가 실린 화물열차가 지나다니곤 하던 철길이 가로지른 그 마을은 ‘내곡리’였고 기차역은 경의선 ‘곡산역’이었다.

방에 난 작은 창으로 마을 사람들의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깊은 밤이면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일부러 철길이 잘 보이는 곳까지 나가 멍하게 앉아 있은 적도 많았다. 군사용 무기들이 실린 화물열차가 지나갈 때만 볼 수 있는 실루엣이 자아내는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무기들은 때로 천막처럼 생긴 덮개 천으로 싸여 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워풀하면서도 도발적인 실루엣까지 가려지지는 않았다. 지붕도 씌워지지 않은 화물차에 덩그렇게 놓인 탱크의 덩치와 길쭉하게 삐져나온 포신 그리고 어둠이 빚어내는 아우라는 어슴푸레한 빈 들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러한 장면들이 뇌리에 쌓이자 서른 즈음의 내 가슴은 쏜살같은 뜀박질 후처럼 마구 뛰었다. 그러나 헐떡이는 마음을 굳이 달래지 않았다. 오히려 분출시킬 방법을 찾았는데 경의선에 대한 사진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처음에는 혼자 기차를 타거나 혹은 기차가 지나다니는 길목의 풍경들을 찾아다니느라 곤혹을 치렀으나 이내 마을에 살던 다른 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 마을 언저리에는 화가 몇이 살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의선모임’을 만들었다. 그러곤 어느 하루, 날을 정하여 작업에 임했는데 방식은 이랬다. 서울역으로부터 문산역까지 각 역마다 2명의 작업자들을 배치하여 그 둘이 책임지고 24시간 동안 그 역과 다음 역까지 오가는 기차 안의 모습이나 바깥의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물론 그 작업은 ‘경의선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사진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또 만만치 않은 카메라 가격 때문에 두어명을 제외하고는 사진기들도 초라했다. 그렇지만 작업 다음날 흑백필름을 현상해보니 하루 동안 찍은 사진은 아주 다양했다. 기차 안에는 일반 시민들과 군인들 그리고 헌병이나 파주 일대 미군들의 모습이 흔했고 기차 밖은 이른 새벽 경의선 낡은 기차를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철길을 잃어버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철교 교각들이 있기도 했다. 또 그러한 교각에는 더러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자극적인 구호들이 눈에 띄는 붉은색 페인트로 쓰여 있었고 터널 입구나 출구에는 유사시 철길을 차단 할 수 있는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곤 했다. 도로와 맞닿아 있는 철길에도 어김없이 도로에 설치된 도로 차단 구조물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른바 분단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분단풍경’들이었다. 그러한 풍경이 담긴 사진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한 차례씩 전시를 하고 한 권의 책으로 남긴 채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내곡리를 떠났다. 그렇지만 작업을 마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나는 10여년간 분단 전 남북으로 오가던 철길이나 국도는 물론 서해의 말도(唜島)로부터 동해안 고성까지 접경지대를 따라 분단의 흔적을 찾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분단문화에 대한 작업이 뜸해졌지만 어디에선가 경의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퍼뜩 곤두서곤 했다. ‘경의선모임’이 작업한 구간은 서울역부터 문산역까지였지만 사실 경의선은 1906년 4월3일 개통 당시 용산역부터 신의주역까지 518.5㎞ 구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철도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2003년 6월4일, 50여년 만에 다시 이어졌지만 다분히 상징적인 일일 뿐 정기적인 운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남한 지역의 경의선은 변화가 상당하다. 비둘기호 낡은 기차가 신형 객차로 바뀌었고 단선으로 운행되던 노선은 개통 당시처럼 복선화가 이루어졌으며 더불어 전철화까지 되었다. 또한 용산역에서 이어지던 경의선 구간 중 철길이 지하로 들어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 지상 구간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공원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용산구 새창고개 구간이 그렇고 마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 그리고 와우산 아래 ‘책거리’로 명명된 구간이 모두 ‘경의선숲길’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과 같은 일들은 서울의 일일 뿐 경의선의 일이 아니다. ‘경의선숲길’은 당연히 나의 주의와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동안 견지하고 있었던 경의선에 대한 감정조차 시들해지게 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다시 귀를 쫑긋거리고 경의선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종단철도(TKR: 경의선, 동해선)가 연결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내 철도 공동조사도 무사히 마쳤으니 이번에는 더 이상 미뤄지지 않았으면 싶다. 경의선뿐 아니라 경원선 그리고 철원에서 출발하여 금강산 내금강역까지 달렸던 관광열차인 금강산선 그리고 동해바다를 곁에 두고 달릴 아름다운 철길인 동해선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곳저곳 막무가내로 드나들면 서로 단절되었던 세월만큼 변했을 갖가지 문화의 모습들도 철길이나 도로처럼 단순하게 복원될 수 있을까?

만만치 않다. 경의선 철길이 복원된다는 것은 철길의 연결이라는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복원되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전제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철길의 물리적 연결은 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일이다. 그렇다면 나의 일은 무엇일까? 말했듯 나 자신의 복원이다. 열차가 덜컹거리지 않고 이어진 철길을 매끄럽게 달려야 하듯이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경의선은 아무런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동안 남북의 분단 못지않은 분단이 남남의 분단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마음속 철길에 깔린 자갈을 골고루 배치하고 흔들리거나 삐뚤어진 침목을 바로 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어쩌면 그 일은 단절되었던 경의선이 다시 이어질 세월보다 훨씬 더 길 수도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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