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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학원을 할 때였습니다. “선생님, 하기 싫어요!” 제가 대꾸합니다. “그럼 학이 슬퍼할 텐데.” 정적이 흐르다 학생이 한숨 쉽니다. “…, 그냥 할게요.” 어린 학생들만 이럴까요? 자판으로 친구들과 노닥노닥 딴짓하고(파티션 너머에선 ‘열일’하는 줄 알지요), 과목들과 범위 두께에 한숨만 나오고, 내일까지 제출인데 파일 날렸다 핑계 댈까 궁리합니다. 하는 것보다 하는 척 조작하는 게 더 어렵지요. 그럴 거면 그냥 하겠다 싶게,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지만 안 할 순 없어 안 하진 않는 척하는 건 왜일까요.

공부나 일은 궁둥이로 한다지만, 둔부만 한 두부(頭部) 안에도 궁둥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 궁둥이는 살짝 내려앉은 민들레 홀씨마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한시도 못 참고 들썩거리고 나풀댑니다. 하기 싫은 그것만 아니면 다 재밌지요. 괜스레 책상을 닦고 책장을 가지런히 맞춥니다. 하기도 부족한 시간을 허비하는 걸 자신도 알지만 영 시작이 안 내킵니다.

‘하기 싫음 시름시름 앓는다’는 현대 속담이 있고 ‘게으른 선비 책장 세듯’이라는 전래 속담이 있습니다. 고금막론, 걱정태산 앞에선 오르고 넘을 일이 까마득할 뿐이지요. 그렇지만 저 선비는 게으른 게 아닙니다. 천성이 게으르면 아무 생각이 없죠. 사실 부지런하고 싶은데 부지런하지 못한 자신이 싫을 겁니다.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을지, 형편없이 실망시키진 않을지, 쏟은 부지런이 부질없는 결과는 안될지, 온통 불안한 게으름들입니다. 뭐든 익숙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그러니 불안의 뭉텅이를 조각내 한 꼭지 정복하고 작은 쾌재(아싸!)라도 부릅시다. 분량, 시간, 기승전결 다 무시하고 설렁설렁 대충 넘기다 내키는 데를 붙듭시다. 흥흥, 나사가 빠져야 몰입에 빠집니다. 안 풀리면 나사 풉시다. 일단 건드리면 암담하지 않습니다. 게으름의 다른 이름은 ‘그저 막막’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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