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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가 11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형사절차를 포함하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국의 변호사 2000여명도 시국선언을 통해 검찰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관련자 고발 등을 촉구했다. 법조 삼륜의 두 축인 판사와 변호사들이 일제히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의 ‘재판 거래’ 의혹 수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나머지 한 축인 검찰은 이미 수많은 고발장을 받아든 채 수사 착수 시점을 저울질하는 터다. 이제 김명수 대법원장이 용단을 내리는 일만 남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대표판사 115명은 이날 임시회를 열고 10시간 동안 격론을 벌인 끝에 4개 항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해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이번 사태로 주권자인 국민의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 및 법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형사절차를 포함하는 진상조사와 책임 추궁,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함을 분명히 했다. 앞서 지난 1~8일 전국 33개 법원 중 21곳에서 열린 판사회의에서도 대다수가 검찰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법원이 직접 고발이나 수사의뢰를 해야 할지에 대해선 견해차를 보였으나, 수사 자체에 명시적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차관급인 서울고법 부장판사 회의가 유일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규탄 전국 변호사 비상모임’이 주도한 변호사 시국선언에는 14개 지방변호사회 회장단 중 9곳이 참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시국선언 때보다 참여한 회장단이 많았다. 변호사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들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앞에서 시국선언을 한 뒤 대법원 앞까지 이례적으로 가두행진을 벌였다. 재판 거래 의혹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과거사 사건 피해자단체들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각각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지만, 사법부는 오로지 주권자의 믿음을 권력의 존립기반으로 삼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는 양승태 대법원이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헌신짝 취급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상고법원 신설이라는 사익을 실현해줄 청와대밖에 보이지 않았다. 법원이 주권자의 신뢰를 내팽개친 증거를 목도하고도 법원장 35명을 비롯한 일부 고위법관들은 검찰 수사가 사법권의 독립을 해친다며 ‘셀프 조사’로 끝내자고 한다. 김 대법원장도 “대법관들 의견까지 들은 뒤 심사숙고해 결론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현 대법관들 가운데 절반인 7명은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상고심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다. 검찰 수사가 개시되면 조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에게 형사조치 여부 등 후속 대책을 묻겠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이기 이전에 시민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은 공직자이다. 김 대법원장이 지금 새기고 실천해야 할 원칙은 명확하다. 사법권을 맡긴 시민의 뜻이 준거틀이 돼야 한다. 지난 4일 공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선 ‘사법부 판결을 불신한다’는 응답(63.9%)이 ‘신뢰한다’는 응답(27.6%)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시민과 대다수 법관은 이미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사법농단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라는 게 그들의 뜻이다.

김 대법원장은 12일 북·미 정상회담과 13일 지방선거 일정이 마무리된 후 최종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의견 수렴은 할 만큼 했다. 이제는 결단하고 실행할 때다. 김 대법원장은 환부를 도려내는 발본(拔本)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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