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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 살 때 우리 집은 단칸방 셋방살이를 면하고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마당이라고 해봤댔자 손바닥만 했지만, 그래도 마당 한구석에 개집 하나는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개를 얻어와 개집 앞에 묶어놓았다. 누렁이라 불리던 개는 무럭무럭 잘 자랐는데, 여름날 아버지가 자전거 안장에 싣고 대문을 나선 뒤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개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까만 눈을 끔벅이며 울던 누렁이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 시절 복날이면 개를 잡는 건 흔한 일이었고, 나도 어른들이 떼어주던 고기를 곧잘 받아먹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의 결심은 우주에서 나와 함께 존재하는 한 존재에 대한 공감, 그것 말고는 더 설명할 게 없었다. 사람 몸에 개고기가 가장 좋다는 동네 의원 말을 평생 맹신하는 아버지는 내 결심을 번번이 묵살하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먹지 말라고.

세상에 이로운 일을 실천하고자 채식을 한다는 청년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선택은 어린 시절 나의 결심과는 다른 것이지만, 채식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업하게 되면 채식주의자로 살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눈치를 준대요.”  

그는 지금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밥 먹는 게 꺼려진다고 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만한 식단이 없는 외식 문화에 대해 말했지만, 진짜 문제는 식단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한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존중되는 것, 우리는 그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았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그런 바람은 부질없을 테니까.

그는 내게 한 학자의 글을 보여줬다. ‘비거니즘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도, 잃음을 감수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비폭력을 지지하고, 나약한 존재들의 착취를 거부해 내적 평화를 얻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게리 프란치오네)

올여름 아버지에게 이 말을 해드린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궁금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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