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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유치·건설하는 과정에 해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경찰청에 재발 방지 및 인권 보호 개선책 마련을 권고했다. 정부에도 물리력을 동원해 기지 건설을 강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했다. 늦게나마 국가의 부적절한 국책사업 시행과 인권침해를 확인, 개선책을 촉구한 것은 다행이다.

이번 조사로 강정 기지 건설은 총체적으로 잘못됐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2007년 4월 강정마을회 회장은 총회 소집공고도 하지 않고, 의제도 무단 변경해 기지 건설 안건을 상정했다. 그 결과 마을 주민 1900여명 중 87명만 참여한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렸고, 국방부와 제주도는 사전에 계획한 대로 사업 공식화를 결정했다. 주민들이 사후 주민투표를 통해 기지 건설 반대를 결의했지만 당국은 묵살했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할 때는 그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는 이런 과정이 전무했다. 심지어 주민투표 당일 해군은 주민 100명을 차에 태워 관광을 시켰고, 경찰은 일부 주민의 투표함 탈취를 방조했다. 주민자치의 전통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결정한 것도 모자라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반대 주민의 의사 표시까지 억압했다. 신고된 집회 방해와 강제연행은 일상이었고, 과잉 진압과 진입 봉쇄도 자행됐다. 반대 측 주민을 고의로 폭행하는 등 인권침해도 예사로 벌어졌다. 국군기무사와 국가정보원은 뒤에서 경찰의 강경 대응을 조장했다. 2011~2013년 경찰청과 청와대, 국군사이버사령부가 해군기지 관련 인터넷 댓글 등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 결과 평화로운 마을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됐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는 말 이외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문제는 해군기지가 건설된 후에도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와 법적 조치 취소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법원의 조정에 의해 주민들에게 청구된 구상권이 취소된 것 이외에 이번 조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사실상 정부가 한 일은 없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또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국가 차원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부적절한 사업 추진과 인권 탄압에 대해 마을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제주도와 함께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공공사업 추진 시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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