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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절했다. 기차역에 마중을 나와 학교 가는 길 내내 도시의 지리와 지명을 설명했다. 그 도시의 토박이인 그는 자랑할 게 꽤 많았다.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공원에 들렀던 유명 인사들의 이름도 기억했다. 그의 자랑은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얼마 전 아이들과 1박2일로 다도 예절 실습을 했으며, 아이들을 이런저런 직업체험에 데리고 다닌다는 말에 참 세심한 학교구나 싶었다. 그의 말을 설렁설렁 들은 탓이었다.

강연을 끝내고 나오자 그는 아이들이 행여 소란스럽지는 않았냐고 걱정했다. 아이들이 모두 열심히 들었으며, 재치 있는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대답에 그는 안도했다. 그러고는 강연을 들은 아이들이 형편이 어려워 지원을 받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제야 나는 아뿔싸, 그가 자랑하듯 말한 행사들이 모두 일부 아이들만 참여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수많은 ‘특혜’에 내 강연이 들어가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등골이 서늘했다.

‘특혜’라는 걸 받은 아이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학교는 생활보호대상자 자녀들을 지원하는 상담 선생님을 교내에 둔 시범학교라서 상담 선생님은 수시로 교실을 오가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서류를 받았고, 지원활동 계획을 알렸다고 했다.

“우리 반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교실로 상담 선생님이 찾아오는 게 너무 싫다고요.” 학교에서 만난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참 속상했다. 이런 걸 어른들은 지원이라고, 복지라고 말하는가? 나는 차마 친절한 그에게 아이들 마음은 헤아려봤는지 묻지 못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 테니까.

그래도 내내 그 일이 마음에 쓰였다. 복지가 대통령이 된 누군가 선심 쓰듯 주는 수혜가 아니고 안정적인 사회를 위한 국민의 권리라는 걸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까? 아니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복지라면 ‘없는 형편’을 볼 게 아니라 ‘없기에 행여 마음 다칠 수 있는 사람’을 봐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미래를 말하는 이들은 부디 ‘사람’을 바라봐 주길,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봐 주길….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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