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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우리 때도 어른들한테 흔히 들은 말이었다. 우리 동네 할머니는 인사하지 않고 지나가는 철공소 집 아들을 보면서 이리 말했고, 성질 고약한 음악 선생님은 출석 부를 때 시킨 대로 소프라노 목소리로 대답하지 않는 애를 두고 이리 말했고, 버스 안에서 자리 양보하지 않는 여학생 뒤통수에 대고 낯 모르는 아주머니도 이리 말했다. 요즘 것들은….

요즘 것들로 시작하는 말의 끝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쨌든 요즘 것들은 예전 것들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모든 요즘 것들이었던 이들의 염려와 걱정에 요즘 것들이 저항하면서 진보한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신문이 있다고 해서 구독 신청을 해서 받아보니, 신문 제호가 떡하니 ‘요즘 것들’이었다. 아, 이토록 통쾌한 이름이 있을까. 한참 웃었다. 그들은 어른들이 툭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요즘 것들’의 칼자루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요즘 것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정면 승부를 택한다. 청소년의 인권문제, 성문제, 노동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최소한의 삶을 서로가 책임지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학습 시간 줄이기 프로젝트’를 제안하는가 하면, 19금 선거 불복종 선언을 하고, 청소년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말한다.

신문을 받아볼 때마다 그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느 건물 지하 어두컴컴한 곳에서 모여 앉아 타자기를 두드려가면서 기사를 쓰고, 등사기로 신문을 찍어내서 해가 떨어지면 도시로 나와 은밀하게 뿌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할 무렵 ‘요즘 것들’ 편집부원 한 명이 전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밝았다. 이번 호가 좀 늦어져서 죄송하다는 사과 인사였다. 그러면서 일 년 구독이 끝났으니 연장하려면 구독료 보낼 곳을 문자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과격하지만 친절하다. 독자한테 일일이 사과 전화를 하다니…. 그냥 반갑고 좋았다. 역시 나는 예전 것이라 친절한 것을 좋아하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요즘 것들’을 볼 적마다 예전 것이 되어버린 게 슬프다. 나도 요즘 것들이고 싶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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