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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그들은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몇 근 끊었고, 읍내 마트에 나가 음식 재료를 사놓았다. 그날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신바람이 났다. 동료들이 그렇게 좋으냐고 놀리듯 말해도 싱글벙글 웃었다.

마침내 그날, 그들의 조국이 스즈키컵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선수들의 발끝 하나하나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지 그리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 금성홍기로 뒤덮인 경기장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슴 벅찼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축구 경기를 보면서 기뻐할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머무는 곳은 논밭을 메우고 산을 깎아 빽빽하게 공장이 들어선 곳이다. 봄이면 가풀막에 드문드문 개나리 진달래도 피고, 여름이면 갓길에 풀숲이 무성해도 그곳은 한밤중까지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온종일 2차선 좁은 도로를 내달리는 트럭의 먼지에 뒤덮여 사계절 내내 잿빛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 없는 곳, 몇 년에 한 번 기껏해야 갈라지고 깨진 도로에 새 아스팔트를 까는 게 유일한 환경 미화인 곳.

그곳이 그들이 아는 한국이다. 그중 한 명은 두 아이의 아빠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첫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만큼 자랐고, 둘째가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웠다. 기러기 아빠라 할 수 있는 그는 야근과 특근을 빼먹지 않으면서 그 잿빛 공단에서 일 년 내내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훗날 한국이라고 하면 잿빛 공단만 떠올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에게 한국이 어떤가 묻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잠시 머무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그리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몇 년씩 한국에서 땀을 흘리면서 일한 그에게는 묻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은 그를 사람이 아니라 노동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베트남 축구에 왜 열광하는지 뻔히 알지만, 그래도 베트남 축구에 갖는 관심의 십 분의 일이라도 이 땅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한 번쯤 생각했으면, 아니 이 땅에서 일하는 모든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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