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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된 손전등은 꺼지고, 휴대전화기 손전등이 작업장에 남아있는 젊은 임시직 노동자의 삶을 밝힌다. 막장보다 못한 태안화력발전소의 근무환경에서 컨베이어벨트는 이성 없이 돌아가고, 끝내 우리 시대의 아들 김용균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잠과 사투를 벌이는 어둡고 컴컴한 작업장에서 그는 수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나도 남들처럼 살아야지, 남들처럼.’ 그의 소박한 꿈은 뜯지 않은 컵라면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불쌍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부모의 울부짖음이 모든 이의 심장을 녹였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2018년을 규정하는 단어로 ‘독성이 있는’ 의미의 ‘toxic’을 선정했다. 독성물질, 유해환경, 유해 미세먼지 등의 표현에서부터 ‘미투운동’으로 번진 ‘유독한 남자다움’에 이르기까지 이 단어는 올해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적 단어가 되었다. 직장과 학교는 물론 문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단어의 은유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하니, 한 젊은이의 죽음 역시 유독한 직장환경과 해악의 비정규직, 불법파견 시스템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13일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김씨를 추모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충남 태안의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를 점검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이준헌 기자

인도의 사상가 간디는 일곱 가지의 사회악에 관한 글을 남겼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이 얻어지는 부유함,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행위, 인간성을 상실한 과학, 희생 없는 신앙이다. 1925년 간디가 규정한 사회악이 2000년대를 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 없음에 놀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지만, 그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백성을 위해 일하는 목민관의 도리를 기록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정치하는 사람은 백성을 위해 일할 때만 존재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실세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은 또 다른 원칙 없는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천정부지의 집값 상승과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 현상은 앞날에 대한 희망 없는 좌절감으로 나타났고, 주택은 삶을 영위하는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 초등학생들의 장래 꿈이 건물 임대사업자라는 말을 들었을 땐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정직한 노동으로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2월17일 (출처:경향신무DB)

서지현 검사 폭로로 시작한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은 사회 전 분야로 퍼지며 ‘유독한 남성성’이 일으킨 양심 없는 쾌락을 고발한 대표적 사건이다. 대학병원 교수의 직원과 레지던트 상습 폭행 사건과 지도층 인사들의 상식 이하 갑질 행위는 인격 없는 지식의 대표적 예다. 일부 대기업은 경영성과가 좋아 보이도록 고의로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여기에 더해 제과점, 분식점 등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는 도덕성 없는 상행위를 벌였다. 첨단 과학기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술을 넘어 이제는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며 나아가 첨단기계 속으로 사람을 몰아넣고 있다. 인간성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속에 묻히고 있다.이제 유독했던 2018년의 암울한 시대에 종말을 선언해야 한다. 2017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했던 ‘젊음의 소용돌이(Youthquake)’가 2019년 새해에 다시금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젊은이의 희망을 저버린 사회에 미래는 없다. 국가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엄치용 | 자유기고가·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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