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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고교생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는 참변을 당한 강릉 펜션 사고는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재앙이다. 경찰은 참사의 원인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을 지목했다. 현장 감식 결과 객실 보일러실의 연소가스 배기관의 연결 부위가 어긋나 일산화탄소가 유출되면서 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게 사고원인이라면 사전에 어렵지 않게 조치가 가능한 일이었다. 사고 펜션에는 가스 누출경보기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전 안전점검만 했어도, 가스 누출경보기만 설치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

보일러 가스 중독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일러 관련 사고로 2013~2017년 5년간 전국에서 모두 23건이 발생해 14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 이 가운데 가스 중독 사고가 전체의 74%(17건)나 됐다.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보일러 가스 중독은 1960~1970년대 연탄 가스 중독과 같은 후진국형 사고이다. 그런데도 ‘우정여행’을 떠난 고3생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숙소에서 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뜨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안전불감증이 무섭다.

18일 경찰 관계자들이 수능시험을 마친 서울 대성고 3학년 학생 10명이 사고를 당한 강원 강릉시 저동의 모 펜션에서 사고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준헌기자

농어촌민박시설에 대한 허술한 관리·감독 문제를 지나칠 수 없다. 사고 펜션은 농어촌민박시설로 분류된다. 농촌의 펜션은 농가의 소득증대를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일반 숙박업과 달리 신고만으로도 영업이 가능하다. 230㎡ 미만 주택의 경우 소화기와 단독 화재경보기 등 간단한 소방시설만 갖추면 된다. 가스 누출경보기 설치는 의무가 아니다. 사고 펜션도 소방시설은 점검받았지만, 가스 점검은 지방자치단체 감독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빠졌다. 펜션과 같은 농어촌민박업이 농어민의 소득에 기여한다는 명분 아래 도리어 안전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가치는 없다. 농어촌민박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경보기 설치 의무화 같은 법제화가 필요하다.

강릉 펜션의 참사는 고교생 현장 체험학습 기간 중 일어났다는 점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낸 고3생의 학사관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에 체험학습을 떠난 학생들은 신청·허가 과정에서 교육청의 학습지침을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참변을 당했다. 학습지침이 현실에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교육부는 고3생에게 맞는 수업일수 조정과 교육과정 편성을 숙고해야 한다. 교내 학사 일정을 이유로 교외 체험학습을 학생 자율에 맡겨야 하는지도 재고해야 한다. 수능 이후 고3 교실의 파행운영을 막기 위해라면 수능 연기가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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