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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일장이 섰다. 장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흰 천막이 줄지어 들어섰다. 맨 먼저 천막을 치는 건 장터 들머리에 붙박이로 자리를 잡는 국밥집이었다. 국밥집은 커다란 솥을 내걸고 돼지 뼈를 고았는데, 솥에서 김이 솟아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퍼질 무렵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른 아침 먼 길을 걸어 장에 온 이들은 해가 중천에 오르기도 전에 벌써 국밥집 의자에 궁둥이를 걸쳤다. 대개 사람들은 서둘러 국밥 한 그릇 떠먹고 자리를 비웠지만, 어떤 이들은 술판을 벌이고 오가는 이들을 불러 앉혔다. 취기가 오른 어른들의 거친 말이 오가고, 낯선 어른들과 붙어 앉아야 하는 자리에 아이들이 낄 틈은 없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갈 적마다 국밥집을 기웃거렸지만, 할머니는 매몰차게 그 앞을 지나쳐버렸다. 결국 나는 그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어 보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처음 시골 장터에서 국밥을 먹을 때 그 국밥집을 떠올렸다. 그 집도 이 맛이었을까?

동네 한 아파트 단지에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서는데, 잔치 국수를 판다는 말을 듣고는 벼르고 별러 찾아갔다. 아파트 한가운데 예닐곱 개의 천막이 쳐 있었다. 국숫집은 천막 한쪽 구석에 김을 뿜어대는 솥이 걸려 있고, 반대편에는 플라스틱 탁자 네 개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국숫집 주인은 짧은 커트 머리에, 흰 패딩 조끼를 입은 멋쟁이였다. 그는 능숙하게 국수를 말아 내놓았다.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이미 소문난 집이라 그런지 점심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학원에 다녀온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와 국수를 먹었다. 장을 보러 나온 할머니를 따라 나온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지나가던 친구를 불러 국수를 나눠 먹었다.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국수를 먹으면서 쉬지 않고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시골 장터 국밥집이 생각났다.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나처럼 장터 국숫집을 떠올릴 것이다.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 한가운데 따뜻한 김이 품어져 나오던 국숫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질 것이다. 아, 나는 여전히 우리 동네 장터 국밥집이 그립다. 먹어보지 못해서 더 그립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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