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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문 화동사범대학(화사대) 전파(傳播)학원에서 지난 16~17일 아시아마르크스주의전파연구소(아마연)의 현판식 및 심포지엄이 있었다. 이 행사에는 중국 각지에서 온 내빈 수십명과 대만에서 온 20여명을 비롯해 한국에서 8명, 일본에서 3명이 초청됐다. 지난달 16일 우석대학교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창립 때 아마연의 린저우위앤(林哲元) 교수와 김민정 박사가 와준 것에 대한 답례이자, 동아시아평화연구소의 첫 국제교류사업으로 최자원 박사, 손현주 박사와 함께 방문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한다니…, 괜찮나?(웃음)” 출발을 앞두고 일행 한 명은 이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터부시하던 시대를 거쳐왔다. 그런데 이 위험한 사상을 ‘전파’한다고 하니 여전히 거부감이 남아 있을 수밖에.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관용이 보편화됐다. 반공국가이던 한국에서도 이제는 마르크스주의가 연구 정도에 머무는 한, 크게 문제될 일이 없다. 더구나 소련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현실 변혁의 무기’로써의 위험성을 상실했기에 구태여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도 반공·안보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올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사회주의를 압도할 듯 보였던 자본주의도 몇차례의 경제위기를 겪고 난 뒤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모순이 극대화됐다. 신자유주의의 횡포가 드러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근원적 회의와 더불어 마르크스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는 요즘이다.
상하이의 서점에도 마르크스 탄생 200년을 주제로 한 특설 코너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엥겔스 책은 몇 권 안되고, 주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진핑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상하이 중앙도서관에서도 특설 코너를 마련해 공산주의 사상의 전파와 발전을 전시하고 있었다. 나는 고교 시절에 읽었던 중국의 계몽주의적 공산당 사상가 아이스치(艾思奇) 관련 전시를 보고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내 청춘시대를 회상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전파 과정을 조명하고, 그 정통이 중국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중국은 시장경제화된 지 오래다. 자본주의의 사멸을 예언한 마르크스의 교리와 동떨어져 보이는 원색적인 ‘쩐(錢)’의 세계가 휘황찬란한 황푸강 강변의 야경처럼 펼쳐져 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변혁의 사상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의 도입과 공산당 성립의 역사 속에서 정통성을 내세우고 국민을 통합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를 초대한 화사대 전파학원은 신문과 방송 등 4개 학과가 있는 단과대학이다. 아마연도 이름과 달리 내용에 있어서는 대만의 진보운동과 양안 통일운동의 역사와 현안을 연구하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대만 문제를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고 대만의 각계각층과의 통일전선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아마연의 소장인 뤼신위(呂新雨)는 전파학원장과 겸임이라서 실질적인 책임자는 린저우위앤 교수다. 그는 대만에서 대학을 나와 난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다음 난징의 동남대학 마르크스주의학원에서 교수를 하다가 올해 봄에 화사대로 옮긴 학자다. 그는 젊어서부터 양안의 통일과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대만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해 왔으며, 화사대에서는 그의 이적과 더불어 대만과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연구소로서도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과 민중의 연대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고 보았다. 몇 해 전에 타계한 대만 노동당의 거목 린쓰양(林書揚) 선생이나 첸잉쩐(陳映眞) 선생과의 공감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독재의 감옥에 갇힌 경험을 바탕으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의 길이야말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간해방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주도하에 ‘제1인터내셔날’이 조직돼 ‘공산당 선언’이 나온 지 170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만국의 자본가들을 전율케 했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자 공산주의는 노예제나 식민지의 굴레 아래 신음해 온 세계의 인민들 속으로 열병처럼 만연됐다. 이상사회의 건설과 인간해방의 사상으로 동아시아 민족해방투쟁의 무기도 됐다. 동아시아에서는 계급투쟁을 선도하는 노동계급의 형성이 미숙했으며, 현실적으로 직면하는 모순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해방투쟁이었다. 바꿔 말해 공산주의의 이상을 가진 열혈 청년들의 현실적 과제는 반제민족해방이었던 것이다. 동아시아 혁명의 지도자 마오쩌둥도 호찌민도 김일성도 그랬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속에서 “우리의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를 위한 공산주의다”라고 했다. 그러한 구체적인 요구에 뒷받침되지 않고 관념적인 공산주의 사상만으로 백두의 눈보라 속에서 그 간난한 항일 투쟁을 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린쓰양 선생은 우주관과 인간관에 있어서 철두철미한 유물론자로 일관하며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해방을 이상으로 삼았으나, 그의 현실적인 투쟁은 반일, 반미, 반제, 지주·민족통일이라는 대만 정치의 모순을 표적으로 삼았다.
‘역사의 종언’의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의 파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실의 모순 속에서 현실 돌파의 논리와 방법을 찾아내는 유물변증법적 사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근대 이후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불과 총칼로 이 지역의 민중들의 몸에 ‘아시아’라는 소인을 찍고, 채찍으로 ‘유럽 근대’의 규율을 체화시켰다. 동아시아 민중들은 서구(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노예화라는 범죄에 대항해 인간과 민족의 해방이라는 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을 통해 역사의 정의를 이뤄내고, 제국주의를 붕괴시키며, 인류해방의 전망을 열어나가려고 해왔다. 민족해방 투쟁의 핵심은 자주·자립·주체이며, 한국의 ‘촛불 행동’은 민중이 주권자임을 천명했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과정은 바로 민족주권의 회복을 위한 투쟁과정이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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