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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해가 다가왔다. 십이지에 속하는 가축 가운데 소나 돼지, 닭 등은 도시인의 일상에서 보기 어렵지만, 개는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주로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 사이를 뜻하던 반려(伴侶)라는 말이 요즘은 개에게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오늘날 개는 이처럼 접촉과 교감의 대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주거문화가 바뀌기 전까지 개의 역할은 주로 마당에서 집을 지키는 일이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개는 낯선 이를 보면 짖어대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중국 고대의 철학자 양주에게 양포라는 동생이 있었다. 하루는 양포가 하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가 비에 흠뻑 젖는 바람에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집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짖어대는 것이었다. 양포가 화가 나서 개를 때리자 양주가 말했다. “때리지 마라. 너 같아도 흰 개가 검은 개가 되어 돌아오면 낯설어서 몰라볼 수 있지 않겠니?” 겉모습이 바뀐다고 속까지 바뀐 줄 아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일찍부터 개는 낯선 것을 보면 어김없이 짖어대는 동물로 알려졌다.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는 말이 있다. 촉 지역은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워낙 많아서 이곳의 개들은 어쩌다 날이 개면 해를 보고 마구 짖어댄다고 한다. 구름에 가린 것일 뿐 하늘 아래 해가 없는 곳은 없는데, 해를 보고 짖어대다니 참으로 멍청한 개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인식 역시 늘 경험하는 익숙한 것들에 길들어 있다. 자신이 본 것이 다인 줄 알고 낯선 것을 보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심지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부터 하는 일도 적지 않다. 문제는 소인은 많지만 군자는 드물며, 부조리가 일상인 세상에서 개혁은 낯설고 불편한 일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만세의 사표 공자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비방과 곤욕을 당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천하의 악당 도척이 키우는 개는 훌륭한 요임금을 보면 짖어댈 수밖에 없다. 주인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낯선 이를 보고 짖는 것이 책무인 개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미덕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만 갇혀서 가치 분별을 하지 못한 채 비방을 일삼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성찰과 독서를 할 줄 아는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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