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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도심에 나가보니 거리풍경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으레 연말이면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는 송년 인파로 거리가 북적이고 분위기가 들뜨기 마련인데, 올해는 침체된 경기 탓인지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길가에 놓인 자선냄비를 보며 주위의 어려운 이웃과 나눔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우리 주변에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103만가구, 독거노인은 127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소득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 소득 차이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이 5.52배로 1년 전보다 0.34배 커졌다. 이러한 양극화는 빈곤과 불평등, 차별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소득 양극화 해소에는 국가적으로 ‘부의 재분배’ 정책이 중요하지만, 개인 차원의 나눔과 기부 문화를 실천함으로써 도움을 보탤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 간 소득불균형 못지않게 지역 간 재정자립도의 양극화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특별·광역시의 재정자립도는 66%인 데 비해 농촌지역이 대다수인 군지역은 18%에 그치고 있다. 재정불균형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인구가 유입되게 해 세원을 확대하는 것이지만 이를 현실화하기는 요원하다. 그래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도시의 세원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안의 하나로 10여년 전부터 ‘고향사랑 기부제’(이하 고향세)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나도 농업인과 농촌지역 활성화를 위해 고향세 도입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고향세는 자신의 고향이나 원하는 지역에 일정액을 기부하는 제도로 지역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납세자는 세액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자체는 지역민을 위한 자치행정 수행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고향세를 통해 지방재정이 튼튼해지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인구 증가, 도시와의 균형발전이 이뤄지면서 국가 전체적인 성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면 지자체의 세수가 다시 증가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기부에 대한 답례품으로 지역특산물을 주면 농산물 판로 확대를 통해 농가소득이 증대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2008년 고향세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지난해 기부금이 3조7000억원까지 증가하며 지방재정 확충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고향세 유치가 활발한 사카이정(町)은 고향세로 방과후 돌봄서비스 등 아이들 교육을 지원하고, 용도를 납세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신뢰를 쌓고 있다. 일본의 지자체들이 아동무상교육, 노인복지 등에 고향세를 사용하면서 인구가 늘고 농촌경제가 활성화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검증되었으니 우리도 조속히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고향세 도입은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있고, 국회에 17개의 관련 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다행히 17일부터 열린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논의된다고 하니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회기 중에 반드시 통과되기를 고대한다. 농촌은 5000만 국민의 마음의 고향이며 도시의 근간이다. 고향세가 조속히 도입되어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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