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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의 하청노동자 김용균님이 발전소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중 돌아가는 벨트에 끌려들어가 사망한 지 40여일이 지났다. 그러나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정부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혀 진상규명은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16년까지 매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한국의 노동자 수는 2376명으로 하루 평균 6.5명에 달한다. 산재사망률이 일본과 독일의 4배, 영국의 14배로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의 산재 사망사고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동일한 유형, 동일한 기업의 산재사망이 반복되어 발생하며 끼임, 추락 등 매우 단순한 전근대적인 유형의 사고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추모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과 김용균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김씨 사망사고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정부나 기관의 사고 조사 및 원인 분석에 대한 접근 방식은 법 위반 여부 파악, 기술적 대책 마련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대부분의 산업재해 원인이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나 미숙한 행동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다 보니 사후 대책은 안전교육 강화나 일부 시설의 교체 등 미봉적인 대책으로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동일·유사한 사고가 재발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지하철의 경우에도 구의역 김군의 사망사고에 앞서 성수역과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2명의 노동자가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지는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노동부와 산업안전관리공단, 그리고 경찰 조사에서는 구조적인 원인은 도외시한 채 노동자 과실로 처리되었고, 그 결과 구의역 김군의 사고가 다시 재발되었던 것이다. 

구의역 김군 사망 이후 유족과 시민대책위의 강력한 요구와 투쟁으로 서울시와 서울지하철공사는 기존의 기관 중심의 사고조사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로 과감히 전환했다. 시민대책위가 추천하는 법률가, 교통전문가, 안전전문가, 기술자, 해당 비정규노동자, 청년활동가 등으로 조사팀을 구성해 그 조사팀이 조사를 주도하도록 하고, 서울시와 서울지하철공사, 노동조합 등 관계자들을 지원팀으로 구성하여 물적·행정적으로 뒷받침하도록 했다. 그 결과 구의역 김군의 사망은 규제 완화 중심의 정부정책, 효율 중심의 공기업 운영기조, 위험의 외주화 등 고용구조, 민영화에 기인한 과도한 인력감축, 원·하청의 차별과 단절된 소통구조, 시공 단계에서의 불량 시공 등 물적 가치 중심의 복합적인 원인에 기인한 것임을 밝혀냈다. 

김용균님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위한 방안을 제언한다. 첫째, 김용균님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부발전이나 감독자인 정부가 아니라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추천한 진상조사위원들이 주도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져야 한다. 둘째, 일부 시설에 대한 단편적인 조사가 아니라 ‘발전소 전체의 구조와 문제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셋째, 이를 위해서는 진상조사위원들이 필요한 자료를 어려움 없이 제공받고 현장을 방문 조사할 수 있는 ‘조사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넷째, 정부는 발전회사 경영을 감독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공기업의 예산과 평가를 좌우하는 기획재정부, 노동조건을 감독하는 고용노동부의 각 해당 국장을 지원팀에 합류토록 하여 진상조사를 위한 행정적인 뒷받침과 대책 권고안의 이행을 담보하도록 해야 한다.

<권영국 | 변호사, 전 구의역 진상조사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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