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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여러 출판사에서 신입 직원들을 대거 채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않았던 박사급 구직자들이 취업문을 많이 두드릴 것이다. 2019년에 출판계에 대운이 오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던 뉴미디어의 시대가 드디어 지나가고 다시 책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어려움을 견디고 차근차근 쌓아왔던 실력이 드디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독서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도서정가제를 우회하는 전자책 월정제 서비스, 대형 서점의 매대 판매, 중소기업적합업종 때문에 새 책을 판매할 서점을 낼 수 없는 인터넷 서점들이 만든 대형 중고서점, 거기에 더 치열해지는 경쟁 때문에 신간 판매는 오히려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렇게 사정이 어려운데 채용을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까닭은 이른바 ‘강사법’ 때문이다. 시대의 추세에 맞게 노동 관련 법규의 준수가 중요해지면서 방학 때는 임금을 거르고 4대 보험에서도 소외된 대학의 시간 강사들은 계속적으로 문제였다. 가장 좋은 것은 대학의 가용 예산이 늘어나서 전임 교원들을 많이 늘리고 그들이 강의를 맡으면 된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도 가성비를 따지고 수익률을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형편이라 비용이 많이 드는 전임 교원은 확보하지 않고 노동 문제를 우회할 요량으로 비정규직 교수와 초빙, 겸임, 석좌, 명예, 특임 등 다양한 이름을 단 교수를 양산했다. 이 다양한 이름의 교수들은 다른 생업이 있고 시간을 내서 쥐꼬리만 한 사례로도 충분히 강의를 해서 미래의 동량을 키울 수 있는 분들이다. 

대학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시간 강사를 계속 줄여왔다. 전국적으로 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시간 강사는 3만5000명가량 줄었다. 그 자리를 비정년 트랙을 포함한 전임 교원 1만명, 다양한 이름의 비전임 교원 1만5000명이 메꿨다. 어차피 비용을 더 절감하려는 대학 입장에서 보면 전임 교원들의 강의 부담을 더 늘리고 시간 강사는 더 줄이는 것이 좋다. 온라인 동영상 강의도 적극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은 작년 11월에 통과된 ‘강사법’을 핑계 삼아 구조조정에 더 힘을 쏟고 있다. ‘강사법’은 방학 동안 임금,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보장해 주도록 하고 있는데 그 비용이 버겁다고 강사들을 대량 해고하고 있다. ‘강사법’이 8월에 시행되지만 선제적으로 수백 명씩 시간 강사들을 해고한 대학이 여럿이다.

어쩔 수 없이 시간 강사에게 강의를 맡겨야 할 경우에는 시간 강사에게 다른 곳의 재직증명서와 4대 보험 가입증명서를 가지고 오도록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디서 이런 증명서를 뗄 수 있을까? 햄버거 가게에 알바로 취직해서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하면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겠다. 이틀은 꼬박 일해야 하니 하루 강의하고 나머지 이틀을 교육과 연구에 힘쓰면 되지 않을까? 책을 써서 출판이라도 해 본 경우엔 출판사 문을 두드려 볼 수도 있겠다. 사실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하고 있는 학문후속세대들은 저술과 출판을 통해 우리 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사람들이다. 출판사는 이들이 힘써 저술해서 중요한 책들을 함께 만들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들의 임무는 책을 편집하고 제작하는 출판사의 업무와는 엄연히 달라서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출판사에서 고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도 하지 않는데 각종 증명서를 발급하면 불법이다. 시간 강사들을 대상으로 수수료와 보험료를 받고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회사가 생겼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대학이 자신들이 시간 강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서류들이 불법과 탈법 사이에서 조달될 것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입법 취지를 벗어난 탈법이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할 생각일까? 물론, 가장 곤궁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은 곧 겸임 ‘교수’라는 직함을 얻게 될 시간 ‘강사’들이다. 대학 교원의 지위와 체면을 유지하려면 연구와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시간을 알바로 때워야 하다니. 일주일에 3시간, 혹은 6시간 강의한 강사료에서 보험료와 수수료를 떼어 유령회사에 납부하는 불법을 자행하는 편이 나을까? 경제적 곤궁에 사법적 정의까지 훼손할 지경에 놓였다. 

더 딱한 사정은 그렇게 한다고 대학에 오래 남아 있을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궁금하다. 대학은 돈을 남겨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알바를 겸업하는 강사들은 더 이상 학문후속세대가 아니고 힘겨운 생활인일 뿐이다. 정직원인 교수들도 늘어나는 강의 부담에 연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요원한 대학개혁의 목적지에 가면 웃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는 할까?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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