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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대통령 탄핵 이후 정부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은 탄핵 즉시 직무가 정지되고, 일반인의 신분이 되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틀 만인 12일에야 청와대를 떠났다. 관련 전문가들은 대통령기록을 무단 폐기하거나 관련 증거를 은닉하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한 것도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대통령기록을 최순실에게 전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대통령기록을 국정운영의 증거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국정농단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 지정기록의 권한이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이 해석대로라면 국정농단의 수단으로 쓰였던 대통령기록 상당수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세월호 7시간 행적,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정상 간 통화 내용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청와대에서 최순실과 관련된 각종 대통령기록도 포함되어, 최대 30년 동안 봉인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률해석기관도 아닌 국가기록원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다. 이런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청와대 대통령기록 생산 및 관리 실태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통령기록물의 생산부서, 생산연도, 기능명, 기능별 생산수량 등의 정보가 적혀 있는 목록 확보가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까지 2016년 현재 대통령기록 생산현황은 대통령기록관에 통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그전 통보현황도 정확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이 생산목록 파악이 불가능하면 증거인멸 및 대통령기록 무단 폐기에 대해 외부적 파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검찰은 청와대 부속실 총무비서관 및 기록관리 담당자를 소환해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통령기록물 지정권한은 대통령기록물법상 현직 대통령에게만 있다고 봐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파면 이후 이 권한도 없어졌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도 “대통령기록물법이 규정한 지정 사유는 대통령 본인이 아닌 그 누구도 그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입법취지를 웅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법이 현재의 비상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황 권한대행에 지정하는 대통령지정기록은 인정할 수 없으며, 정치권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차기 정권의 대통령기록 인수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기존에는 대통령당선인 및 인수위원회가 이전 정권의 주요 업무와 관련 기록물을 인수인계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차기 정부는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하고, 대통령기록물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정하면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요 정책결정을 청와대에서 했고, 각 부처는 관련 의사결정에서 소외되어 관련 기록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중한 상황에도 국가기록원은 지난 1월18일 제4기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 선임을 했다. 기록관리 전문가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차기 정부의 개혁과제가 너무 많다. 향후 정치권은 대통령기록관리 문제를 미루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길 기대한다.

전진한 | 바꿈 상임이사·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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