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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봄입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봄인지 모릅니다. 나이 든 가슴에도 봄을 향한 설렘은 꿈틀거립니다. 그런데 새벽을 스쳐가는 바람에는 여전히 손이 시립니다. 결국 와준 시간은 시간일 뿐, 진정한 봄은 아직 멀리 있나 봅니다. 숲의 모습도 변함없이 겨울을 붙들고 있습니다. 빈 몸으로 얼어붙은 듯 서있는 나무가 그러합니다. 새마저 움직임을 멈춘 채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새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무척 분주한 새도 있습니다. 동고비라는 친구입니다.
동고비는 우리나라의 텃새입니다. 크기는 참새 정도이나 몸매는 약간 날씬합니다. 지금 이 시기가 동고비 노랫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숲이라도 그렇습니다. 노랫소리의 기본 단위는 ‘삣’입니다. 더 길게 해서 ‘삐잇’ ‘삐이잇’ ‘삐이이잇’ 소리를 내고, 이를 다시 조합해서 다양한 소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새 중에는 나무타기의 선수들이 몇 있습니다. 나무를 타려면 나무줄기에 매미가 달라붙듯 앉을 수 있어야 하는데 딱따구리, 나무발발이, 동고비가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딱따구리와 나무발발이의 경우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갈 때는 나무타기 선수로 손색이 없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는 어설픈 뒷걸음을 치게 됩니다. 동고비는 위아래 가리지 않습니다. 이동하는 방향으로 아예 머리를 앞두고 움직이니 단연 나무타기 최고의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동고비는 재주가 또 있습니다. 딱따구리의 둥지 입구에 진흙을 발라 제 몸에 맞게 좁히는 아주 특별한 재주입니다.
딱따구리 둥지 입구에 진흙을 발라 입구를 좁히고 있는 동고비.
딱따구리는 나무줄기에 구멍을 뚫고 아래쪽으로 파내려가 나무 속에 빈 공간을 만드는 식으로 둥지를 짓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폭설이 내려도 문제될 것이 없으며, 추울 때는 따듯하고 더울 때는 선선합니다. 지푸라기로 지은 사발 모양의 둥지와 달리 천적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완벽한 둥지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전제합니다. 나무를 파서 둥지를 지을 수 없는 다른 생명들이 이 꿈의 둥지를 그림의 떡으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빼앗으려 듭니다. 더욱이 숲 생명들의 번식기인 봄이 제대로 열리면 딱따구리 둥지를 차지하려는 다툼은 절정에 이릅니다. 이 상황에서 작고 힘없는 동고비는 묘책 하나를 마련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번식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겨울 끝자락에 알맞은 딱따구리의 둥지를 찾은 다음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를 좁히는 길을 찾은 것입니다.
재건축 일정의 처음은 ‘집 보러 다니기’입니다. 이곳저곳 꼼꼼하게 딱따구리의 둥지를 둘러봅니다. 동고비에게 딱따구리의 집을 빼앗을 힘은 없지만 다행히 딱따구리는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으며, 그중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발품만 열심히 팔면 좋은 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입주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청소입니다. 둥지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모두 밖으로 버립니다. 둥지 청소가 끝나면 진흙을 나르기 시작합니다. 진흙은 콩알 크기로 동글게 뭉쳐 하루에 80번 정도를 물어 나릅니다.
동고비가 진흙에 보이는 애정은 눈물겹습니다. 가끔 진흙을 붙이다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따라 날아가 공중에서 부리로 잡을 때가 많으며 그를 놓쳐 풀숲으로 숨더라도 결국 찾아냅니다. 번식의 시작은 둥지며, 번식은 간절함으로 시작해 간절함으로 끝납니다.
재건축은 입구를 좁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입구가 어느 정도 좁혀지면 나뭇조각을 나르기 시작합니다. 나뭇조각은 둥지의 깊이를 조절하는 데 쓰입니다. 대체로 딱따구리의 둥지는 동고비에게 너무 깊습니다. 따라서 동고비는 나뭇조각을 쌓아 바닥을 높이는 것입니다. 입구가 완전히 좁혀지면 나뭇조각을 넣기 힘들기 때문에 바닥 높이의 조절은 입구를 좁히기 전에 마무리합니다.
바닥 높이가 조절되면 얇은 나무껍질을 나릅니다. 나무껍질은 알을 품기 위한 침구입니다. 나무껍질을 까는 일정까지 끝나면 입구를 완전히 좁힙니다. 때로 너무 좁혀서 자신도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주 조금씩 넓혀갑니다. 그러다 몸을 비비며 간신히 들어갈 정도가 되면 재건축의 대장정은 끝납니다. 재건축 기간은 약 3주이며, 이후 일주일 정도 단단히 굳히는 시간이 지나면 둥지는 완성됩니다.
둥지는 오로지 암컷만 짓습니다. 수컷은 둥지를 지을 때 등 뒤를 보기 어려운 암컷이 둥지 짓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암컷에 대한 경계를 서줍니다. 뾰족했던 암컷의 부리는 둥지가 완성될 즈음 닳아 뭉뚝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흙 하나를 뭉쳐와 벽에 발라 곱게 펴기까지는 255번이나 부리로 다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동고비는 작고 약한 새입니다. 하지만 작고 약함을 부지런함으로 극복합니다. 자연이나 인간의 세상이나 부지런함은 소중한 생존전략의 하나며, 부지런함은 누구라도 그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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