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3년,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라지브 간디 기념관에 간 적이 있었다. 인디라 간디 총리의 아들이자 어머니의 뒤를 이어 총리를 지낸 라지브 간디가 1991년 5월21일의 유세 중에 폭탄이 터져 사망한 장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여서 운동장처럼 넓은 광장이었고 잔디와 잡초가 뒤섞여 있는 진녹색의 풀밭과 드러난 붉은 흙이 선명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스리랑카의 무장 단체인 타밀 반군과 관련이 있는 한 여성이 유세를 하던 라지브 간디에게 접근해서 인사를 하는 척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폭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25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그때 듣기로는 세계 최초의 자살 폭탄 테러라고 했다.

기념관이라고 하지만 이렇다 할 조형물이나 엄청난 건물이 있는 건 아니었고 이렇다 할 소음도 방문객도 없이 적막했다. 장소 자체가 거대한 캔버스의 여백처럼 여겨졌다. 최근 그곳을 다녀온 한 관광객이 “가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라지브 간디를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가보라”고 불평한 것처럼 테러 당시의 현장을 거의 손대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설명을 하기보다는 사건 현장 자체에서 각자 역사적인 교훈을 얻어가라는 것 같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우리나라에는 폭탄까지 등장하지는 않았으니 여기보다는 상황이 나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7년 봄, 이 나라의 천지사방에 폭탄이 떠다니고 있는 게 내 눈에 보인다. 가지가지 모양, 온갖 성질의 폭탄이 다 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폭탄, 눈폭탄, 세금폭탄, 전기료폭탄, 문자폭탄, 가짜뉴스폭탄, 갑질폭탄, 은퇴폭탄도 있고 기후변화, 환경오염, 청년실업, 중년실업, 장년실업, 노년 빈곤, 노동력 착취, 차별, 혐오, 인구절벽,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등의 거대한, 사회와 시대가 당면한 폭탄도 있다.

가장 흔한 건 사람 모양을 한 폭탄들이다. 폭탄이 막말을 하고 무책임한 선동을 일삼고 애국을 말하면서 국가 운영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부인하고 내란을 선동하기까지 한다. 제도권에서 넘치는 지위와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단물을 빨아먹더니 이제 와서 제도를 공격한다. 스스로가 사회적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는 양.

독선과 아집과 무능, 교만, 사대주의, 광신주의, 특권의식으로 뭉친 폭탄까지 없는 게 없다. 아스팔트 위에, 국회에, 법정에, 무대 위에, 광장에 육해공 가리지 않고.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터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 역시 폭탄의 일종이다.

인간폭탄의 특징은 시끄럽다는 데 있다. 특히 터지기 전에 그렇다.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만 없다면 제대로 터지는 걸 한번 보고 싶다. 말로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해보라고 열심히 응원해 주고 싶다.

수건돌리기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전단을 건네받는 수준이 아니다. 폭탄돌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누구나 폭탄이 내 손에 있을 때 터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동안은 별일이 없기를, 기왕이면 연금을 받는 동안까지라도. 폭탄 제조자는 물론이고 스스로가 폭탄 자체인 인간들은 폭탄을 처리하는 방법도 모른다. 모르니 떠넘긴다. 결국 폭탄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무고한 사람의 손에 폭탄을 쥐여주고 미꾸라지와 뱀장어들은 도망간다.

물론 모든 폭탄이 다 터진다고 할 수는 없다. 가짜 폭탄도 있고 불발탄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들이 가진 위험성, 폭발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이미 어떤 폭탄은 떨어져 터진 뒤 엄청난 희생을 낳고 자국을 남겼다. 치유되지 않을 상처, 상실, 분열과 분쟁, 재난과 재앙의 흔적. 잘난 인간들이 권력과 지위, 부귀영화가 한가득 차려진 밥상에서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고 나몰라라 하고 가버리고 난 다음의 끔찍한 청소거리도 남아 있다.

떠난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폭탄이 터지는 것을 무릅쓰고 돌아올 만한 커다란 이익이, 신념이 있다면 몰라도.

폭탄이 터지면, 세상은 피와 눈물과 결코 되살릴 수 없게 부서져버린 삶의 조각 조각들이 거대한 폐허를 이룰 것이다. 폭탄이 터지면, 모든 관계는 단절되거나 해체되고 우리가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던 가치는 시든 꽃처럼 쓰레기통에 처박힐 것이다.

폭탄이 생겨날 원인을 제공한 자, 그들의 하수인들, 폭탄 그 자체에 수습을 맡길 수 없고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들이 입은 ‘소년등과’의 갑옷, 엘리트 의식이라는 허망한 가면 아래에 터무니없는 엉터리의, 유아적이고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추괴한 알몸뚱이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나마 이 난장판 속에서 얻은 작은 수확이었다.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폭탄을 일상의 공간에서 떨어진 곳으로 격리하고 뇌관을 제거하고, 그래도 안되면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해 있는, 적체된 폭탄들이 안전하게 처리되거나 제거되지 않고 터져버렸을 경우에 생겨날 문제에 대한 고민은 안 해도 될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세상이 사라져 버린 다음일 테니까.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은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될 곳에, 상관없었을 수도 있던 범죄자들과 그의 변론자, 하수인, 맹목적인 숭배자들에게 낭비했다. 내 인생에서 단 1초도 허비하고 싶지 않은 대상들에게. 그 인간폭탄들이 내가 살고 있는 사회, 시대에 생겨났다는 이유로.

이게 무슨 거국적 재변인가. 존재 자체가 앙화인 그들을,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들을 매일 언제 어디서나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보게 되다니.

제발이지 헌재의 탄핵소추 심판이, 일각이라도 빨리 이 시대와 사회의 거대한 폭탄돌리기를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우리가 어떻게 폭탄을 처리했는지, 폭탄을 방치했을 경우 피해가 어땠는지 선례와 교훈이 되도록 현장을 잘 보존해야 함은 당연하고.

용서와 화합은 일단 폭탄을 처리하고 난 다음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안 해도 된다. 폭탄을 끌어안고 미래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폭탄을 따로 모아서 폐기물처리장에 가져다두고 그 다음은 저희끼리 알아서 하게 했으면 좋겠다.

성석제 소설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